▲미국의 비영리단체 IISC(Interaction Institute for Social Change) 소속 작가 앵거스 매과이어가 평등(equity)와 공평(equity)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그림
/interactioninstitute.org
우리는 어떤 정책을 추구해야 할까? 지난봄 코로나19 위기를 진단할 때, 반다나 시바는 "이제 탐욕으로 움직이는 자기중심적인 세상(egocentric world)에서 나와 지구의 삶을 평화로이 영위하는 생태 중심 세상(eco centric world)으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그는 다음 단계의 경제는 자연을 위해 일하는 경제가 되리라 예측했다. 같은 지역에 있는 소비자에게 의지하는 순환경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미 풀뿌리 조직뿐만 아니라 지방정부들까지 나서고 있는 대안으로 이는 지역경제 중심으로 나와 나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나와 지구 전체와의 관계를 복원하는 경제이다.
그는 관계 속에 있는 개인의 각성을 촉구했다.
"우리들은 소비자가 되면서 작아졌어요. 뭔가를 주문하기만 합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서도 우리의 손은 뭔가 멋진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손은 바느질을 할 수 있고, 텃밭을 일굴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배움은 머리(head)와 가슴(heart)과 손(hand)을 함께 쓰는 가운데 일어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지성은 성장합니다. 순환 경제는 우리가 가진 다양한 지성이 모든 차원에서 순환하는 거죠. 우리는 단지 데이터로 보이는 소비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역공동체 안에서, 지구 가족들 품에서, 그리고 우리 자신 안에서 활동하는 창조적인 인물들입니다."
반다나 시바가 주장하는 순환경제는 먹는 사람과 기르는 사람이 연결돼 있는 관계다. 우리가 생산자와 맺고 있거나, 우리의 텃밭 농사와 맺고 있는 그 관계가 (우리 밥상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 기업의 제품을 보면 생산자와 멀어진 우리의 현실을 알 수 있다.) 브랜드이기에 우리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관계를 보살필 필요가 있다.
지역경제는 단지 환경을 위해 탄소발자국을 남기는 거리를 줄여 지역 중심으로 돌아서자는 의미가 아니다. 물류의 이동 거리를 줄이고자 하지만, 관계 맺기는 거리를 넘어선다. 우리는 의식 속에서 관계의 거리를 무한대로 넓혀낼 수 있다.
아마존 원주민의 안녕을 염려하며 지구의 허파를 지켜낼 수 있고 종(種)을 넘어 순록의 생존을 위해 툰드라 해빙을 막아 지구의 온도 상승을 멈출 수도 있다. 바로 모든 존재가 연결돼 사는 상호존재(interbeing)라는 현실을 깨닫는 길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생명 아닌 것을 포함해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 그 진실을 개인들이 알아차리도록 자신의 지능과 감각을 살려(holistic) 사고해낼 수 있도록 하려면 사회는 개인이 생존에 매몰되지 않고 안전을 느끼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 그 속에서 개인은 세상의 모든 존재를 받아들여 통합된 자아로 나아갈 자유를 누릴 수 있으리라. 개인과 지구와의 관계를 복원하는 바탕인 안전망을 복구하는 것이 정책(사회 시스템)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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