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수업> 김준범 작가와 zoom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김준범
#내 삶의 주어가 '나'에서 '그녀'로 바뀌는 순간, 가려졌던 아내가 내게 다가왔습니다. (p.7)
"저는 마흔다섯, 한국의 평범한 아빠입니다. 직장을 다니며 글을 쓰는 보통의 작가고요. <아내수업>이라는 책을 썼어요. 7년째 가족과 포항에서 살고 있어요.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에요. 힘들었던 시간을 가족의 힘으로 잘 극복한 만큼,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많은 이와 나누고픈 꿈이 있습니다."
- <아내수업> 출간 후 2년이 지났어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올해 1월, 아내가 마지막 수술 후 5년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았어요. 이제야 마음속 짐을 조금 내려놓게 됐어요. 아내도 이제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보고 싶다네요. 원래는 육아휴직 기간에 가족들과 유럽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려 했어요. 산티아고 순례길도 걷고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다 무산됐죠. 대신 주말마다 국내의 멋진 곳을 찾아다니며 둘레길을 걷곤 해요."
유럽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려 했던 그는 사실 오랫동안 유럽에 살았었다. 결혼하자마자 주재원으로 발령받아 아내와 폴란드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상상하던 것과 사뭇 달랐던 폴란드의 회색빛 하늘, 그 아래에서 7년을 살았다.
#폴란드 행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아내는 가장 가까웠던 부모와 가장 멀어지고, 남이었던 남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부부가 되었음을 그제야 실감한 아내에겐 설렘도 두려움도 있었을 겁니다. (p.5)
-폴란드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둘 다 유럽 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어요. 낭만을 기대하며 폴란드에 갔지만, 현실은 상상과 전혀 다르더군요. 전 깨어 있는 시간에 대부분 일을 했어요. 항상 새벽까지 일하고 아침 일찍 출근하고요. 그동안 아내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땅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하루 종일 혼자였죠."
-아내분이 많이 외로웠겠어요.
"네. 저도 남편 역할이 처음이라, 돌이켜보면 잘못한 게 참 많아요. 우선 낯선 나라에서 자리 잡을 때까지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이 컸어요. 한국보다 살기 힘든 곳이니 독한 마음 먹어야 한다며 정신적으로 강해지라고 자주 요구했어요. 이제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지금껏 살아온 29년의 삶을 잊고, 당신도 알아서 살아남을 능력을 키우라고요. 아내가 저 없이도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구실로 혹독한 말을 쏟아냈어요. 아내에겐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간일 거예요."
#"팀장님, 아내 곁에 있어주세요. 지금 팀장님이 있을 곳은 직장이 아니라 아내와 가족 곁입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어요." (p.45)
-폴란드 생활 7년 만에 아내의 암 선고, 무슨 생각 하셨어요?
"무엇보다 타지에서 7년 동안이나 아내를 독하게 몰아세웠던 게 뼈저리게 후회스러웠어요. 아내는 자기의 불만을 표현하기보단 침묵하는 성격이에요. 그렇게 속으로 삭이며 아내 홀로 감당했던 외로움과 상실감이 우울증으로 번진 것 같아요."
힘든 수술을 마친 아내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루 이틀 지나며 정신은 차렸지만 아내의 배에선 핏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내의 손을 잡고 느릿느릿 병원 복도를 돌며, '괴로운 거 내색 않는 답답한 성격 좀 고치자'고 우격다짐으로 약속했다. 그리고 그 역시 다짐했다. 아내를 위해 변하자고.
이제는 좋은 아빠를 꿈꾼다
#아침부터 서툰 아빠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밥 먹자, 양치하자, 세수해야지, 피아노 늦겠다, 얼른 옷 입자…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고 밥을 떠먹이며 훈계하느라 혼이 다 빠질 지경이다… 돌아온 아이에 대한 반가움과 동시에 짜증 섞인 피로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세상에…' 예상은 했지만 집안일이란 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p.124)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아내 병간호와 육아에 뛰어드셨어요. 집안일을 해본 적 없는 남편이 처음으로 아내의 일상을 살게 된 건데요,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요?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요. 나머진 다 해도 이것만은 정말… 지금도 힘들어서, 아내에게 그것 빼고 다 하겠다고 했어요. 아내도 허락했고요. (웃음) 한국에 막 왔을 땐 처가에 얹혀살았어요. 그땐 장모님 도움을 좀 받았는데, 분가하고 나니 전쟁이 시작되더라고요. 아이들 등원, 장보기, 청소, 빨래 전부 제가 해야 했어요. 폴란드에서 사 온 접시들도 이때 많이 깨 먹었네요. 그동안 아내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그때 알았죠. 아내들이 남편이 출근하면 여유롭게 음악 들으며 커피나 마신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행동반경이 넓어지는데, 따라다니며 챙겨주는 것도 정말 만만치 않아요. 육아와 살림은 직장 생활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아내는 바뀐 남편의 모습을 어떻게 보나요?
"'나랑 결혼하길 잘했지?' 물어보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가 왜 당신이랑 결혼했지'하고 대답해요. (웃음) 말은 그렇게 해도 내심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루는 제가 가족 행사 계획을 세우는 걸 보고 '당신 정말 대단하다'라고 하더라고요. 잘 못 해준 것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현할 때면 아내도 이제는 괜찮다는 반응을 보여줘요. 속 시원하게 웃으며 지난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 같아 감사해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 '아빠'라는 낯선 나로 살아가는 동안 '사랑의 언어'도 변해간다. '알까?'하는 관심이 '알겠지'라는 단정으로, '좋아할까?'하는 기대감이 '이정도면'이란 의무감으로 바뀌어가는 동안 나는 아내에게 어떤 남편으로 비쳤을까. 배려가 가득한 조심스러운 물음표로 완결되었던 언어가, 말줄임표에서 성급한 마침표로 바뀌는 동안 대화는 짧아지고, 결정은 빨라지고, 감정은 외면되어갔다. 한쪽에서는 '이해'라는 말을 양해 없이 던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해 없이 '양해'해주어야만 했다. (p.85)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편의 변화가 뭔가요?
"사소한 거라도 아내에게 물어보는 거 아닐까요. '오늘 일정이 뭐예요?' '00 때문에 힘들죠?' 이렇게요. '나는 당신의 일상에 관심이 많다', '당신과 대화하고 싶다'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요. 의견이 없더라도 물음을 던지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사소하지만 정말 중요해요. 계속 그렇게 질문을 던졌더니 입을 잘 열지 않던 아내가 이젠 자기 의사를 잘 표현해요. 이번 추석 고향 방문을 앞두고도, 아내가 올해는 가지 말자고 확실하게 얘기하더라고요. 예전에 비하면 큰 변화죠."
그의 변화는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회사 일로 바빠 아이를 낳는 아내의 곁조차 지키지 못한 과오가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를 뒤로하고, 이제 좋은 아빠를 꿈꾼다.
#이번에도 둘째 소식을 전화로 들어야 했고, 두 달이 더 지나서야 아이를 안아볼 수 있었다. 나는 참 편하게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p.31)
-아내의 투병 이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지셨죠. 육아휴직도 하시고요. 육아휴직은 어떻게 결정하셨어요?
"처음엔 많이 망설였죠. 사실 육아휴직에 대해 아내도 100% 찬성하진 않았거든요. 생계 같은 여러 문제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오롯이 가족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아내를 설득해 직장에 육아휴직 신청서를 제출했어요. 직장 내 반응도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내년에 승진 안 할 거냐'는 핀잔에, 어떤 분은 노골적으로 이직을 권유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라 올해가 지나면 육아휴직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곤 그냥 밀어붙였어요."
'다음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