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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취미지?" 남편의 한마디에 눈물이 터졌다

작가를 꿈꾸지만 이룬 건 없을 때, 무너지는 나를 다시 다잡습니다

등록 2020.09.11 10:14수정 2020.09.1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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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고 싶다고, 보다 정확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드디어 말했어요.
글을 쓰고 싶다고, 보다 정확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드디어 말했어요. pixabay

이상하죠? '글을 쓰고 싶다'라는 말은 함부로 내뱉기가 어려웠어요.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꿈인데, 그걸 꿈이라고 말했을 때 '피식' 하고 새어 나올 누군가의 비웃음이 두려웠어요.


그러다 그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한 건 결혼 13년 차에 접어든 작년 가을이었어요. 평소 동갑내기 남편과는 대화가 잘 통했기에 남편에게만큼은 이제 털어놓을 수 있었던 거죠. 글을 쓰고 싶다고, 보다 정확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드디어 말했어요. 말을 꺼내기까지가 어려웠지 막상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편했어요.

그렇게 마음 편한 몇 달이 지나자 저도 모르게 조바심이 생기네요. 글쓰기가 꿈이라 말을 해 놨으니 뭐라도 내놔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생긴 거죠. "어때? 글은 잘 써져?" 하며 가끔씩 묻는 남편의 말에 점점 '노땡큐' 하고픈 마음이에요.

하지만 뭐라도 돕고 싶던 남편은 '글쓰기 프로젝트' 기획 담당자 역을 자청한 사람 같았어요. 예를 들면, 제가 듣고 싶어 하던 글쓰기 강의가 있었는데 그 강의를 반대했어요. 지금은 요령을 습득할 때가 아니라는 거죠. 저만의 색깔이 없어질까 염려스럽기도 하다고요. 글은 내가 바람 쐴 수 있는 통로인데, 그래서 내가 글을 사랑하는 건데 뭔가 제 자유를 침해당한 기분이 살짝 들어요.

워킹맘이었다가 전업주부가 된 지 6년, 스스로 돈을 벌지 못하는 자, 즉 경제적 자유가 없는 자의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도 들었어요. 결국 그 수업은 듣지 않기로 했어요. 그리고 글도 좀 몰래 숨어서 쓰게 되네요. 시험 당일 날 아침, '나 어젯밤에 공부 하나도 못 했어' 하며 말하는 아이. 그 아이의 심정으로 저도 현재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괜히 떠벌리고 있어요.

어느 순간, 내가 구축해놓은 방어선 


남편이 출근하길 기다리며 커피 한 잔을 마시려는데 어느 날 남편이 묻더라고요. 평소와 달리 뭔가 좀 싸한 표정으로 "글쓰기는 그냥 취미인 거지?"라고요. 갑자기 남편이 제 앞에서 해서는 안 될 금기어를 꺼낸 기분이에요.

저는 눈만 끔뻑끔뻑한 채 그 말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썼지만 순간적으로 날아온 그 질문은 폭발력이 대단해요.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대답 대신 나온 건 왈칵 쏟아진 눈물이었어요. 당황한 건 남편이나 저나 마찬가지. 한두 시간가량 침묵의 시간이 흘렀어요. 제 기분이 가라앉기를 끈기 있게 기다린 남편은 겨우 다른 질문 하나를 이어갈 수 있었어요.


"그 질문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했어도 지금과 똑같은 반응이었을까?" 하고요. 음, 아니요. 그럴 리가요. 다른 사람이 물었더라면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그들은 내 꿈을 모르니까요. 그냥 취미라고 둘러댔을 거예요. 남편의 질문을 그냥 넘기지 못한 건 제가 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기 때문이에요.

'너 글쓰기가 꿈이라더니, 꿈 아닌 것 같네. 꿈이라고 했지만 달라진 게 하나도 없잖아. 그걸 꿈이라고 해도 되는 거야?'

꿈이라고 말했지만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상황, 꿈이라고 증명할 만한 그 무엇도 없는 현실. 그걸 그 순간 제가 견디지 못하고 폭발한 거예요. 체념하듯 '이제라도 그냥 없었던 일처럼 은근슬쩍 취미라고 말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자 울음이 터져 버리고 말았어요. 취미라고 말할 수 없었어요. 이제 와 취미라고 말하기엔 내 꿈이 헐값에 메겨지는 것 같아 싫었고, 꿈이라 대답하기엔 부족한 제 자신이 싫었어요.

'언젠가 글을 쓸 거야.'
'내가 글쓰기를 제대로 안 배워서 그렇지 배우면 곧 잘 쓰게 될지도 몰라.'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 여러 종류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나 봐요.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예리한 남편의 눈에는 저의 그런 마음의 움직임까지도 고스란히 비쳤던 거죠. 남편은 저를 깨우고 싶었대요.

"언젠가'라는 생각을 버리고, 네 꿈이 맞는지 스스로 다시 한번 확인해 보길 바랐어. 그러기 위해서 자극적으로 물어본 거야. 미안해."

비록 자극적이긴 했지만 덕분에 저는 제 꿈이 더 선명해졌어요. 절대로 취미로는 남겨두지는 않겠어, 글쓰기는 내 꿈이야!

덧붙이는 글 해당 글은 브런치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https://brunch.co.kr/@angelasim2020
#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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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터울의 두 아이를 키우고, 책을 통해 나를 키우는 독서여행가 안젤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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