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현장고독사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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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해용씨는 행여나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건물주에게 소문 내지 말라는 부탁을 유난히 많이 받는다. 고독사 현장에는 채권자도 나타난다. 값나가는 유품이 있다면 중고로 팔아서 손해를 줄이려 한다. 쓸만한 물건을 챙기는 이웃까지, 그의 작업 현장은 조용하지만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온다.
길해용씨에게 유품 정리를 의뢰한 한 건물 주인은 화를 냈다. 죽은 이의 소문을 들은 다른 세입자들이 방을 빼달라고 해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독사한 사람을 '죽어서까지 민폐 끼치는 XXX'라고 욕을 했다. 이어진 집주인의 질문에 그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많이 다녀 봐서 알잖아. 이런 사람들 안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해?"
이런 집주인도 이해할 수는 있다. 한편, 죽는 사람도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 전국 장터를 돌며 '품바' 공연으로 생계를 잇던 이의 유서에는 "주인집 할머니, 사모님... 죄송합니다. 그냥 바깥에서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사과를 거듭했다.
죽음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 허탈하다는 듯 보인 길해용씨의 웃음 뒤에는 진한 걱정도 배어 있다. 최근 들어 그는 젊은 죽음을 많이 만난다. 30대, 40대와 같은 비교적 젊은 사람들의 자살로 인한 유품 정리 의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0대 남성 고독사가 아직은 제일 많다고 한다.
"혼자인 50대 남성은 실직, 알코올 중독 등 문제가 많아요. 그런데 복지 대상에는 빠져 있어요. 한국 남성들의 마지막 자존심인지도 모르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독거노인이라고 불리는 60, 70대는 오히려 지자체에서 수시로 연락하고, 방문하는 복지서비스를 받아요. 제 경험으로는 재가복지나 방문 복지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어르신들의 유품 정리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현재 복지 정책은 65세 이상의 독거노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소외는 나이를 구분하지 않고 찾아온다.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30~40대의 자살과 몸과 마음을 의탁할 곳 없는 50대 남성들의 고독사는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올해 3월 제정된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고독사 실태조사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무연고 사망자도 해마다 늘어
고독사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1990년 핀란드가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 국가로 발표되었을 때 핀란드 정부는 자살자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해 모든 자살자의 이력을 추적했다. '왜 자살했는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연구는 향후 자살률을 줄이기 위한 정책 개발에 쓰였다. 그 결과 핀란드의 자살률은 전 세계 10위 밖으로 떨어졌다. 자살 방지를 위해 심리상담을 하고 자살 위험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방문 서비스나 공동체 돌봄 같은 정책을 실시했다.
한국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일본의 대책도 눈여겨 볼만하다. 일본의 토기와다이라 주택 단지는 고독사 제로를 목표로 사회복지협의회, 민생위원, 자치회가 함께 협력하고 있다. 고독사 방지를 위해 긴급 전화를 설치해 상담할 수 있는 창구를 조성하고, 고독사 위험군끼리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조성했다.
한국도 자살 방지를 위한 각종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자살사망자 7만 명을 전수조사하고, 자살 예방 게이트키퍼를 양성해 자살 고위험군 발굴 네트워크를 구축 중이다. 민간에서는 자살 예방 캠페인, 위기 상담 시스템 운영, 자살 시도 청소년 치료비 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1, 2위를 다툰다. '2020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8년 한국 자살률(10만 명 당 자살자 수)은 26.6명으로 OECD 회원국 중 1위다. 자살률은 줄어들지 않고 무연고자의 죽음도 늘고 있다. 2014년 1379명이었던 무연고 사망자는 해마다 늘어 2018년 2447명으로 70% 이상 증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자살 이유 1위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수없이 많은 고독사 현장을 다녔던 유품 정리사 길해용씨가 한 마디로 지목한 죽음의 이유는 가난이었다. 가난을 없애지 못하면 고독사도 줄이지 못한다. 외로워서 죽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서 죽기 때문이다.
길해용씨는 매번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며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체감했다.
"저는 이번 인터뷰 일정을 정할 때도 그랬지만, 평소 약속을 정할 때 날짜를 확정 짓지 않습니다. 언제 어떻게 유품 정리 의뢰가 들어올지 모르니까요. 죽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고, 누구와 함께일지도 모르죠."
누구에게나 예외 없는 죽음. 그 이유가 가난인 것은 슬픈 일이다. 긴급재난지원금에서 공공 근로까지, 많은 경제지 기자와 전문가, 정치인들이 비생산적인 영역에 돈을 쓴다고 비판한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가난 때문에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고독사는 어떤 의미일까? 저들이 혹시 길해용씨가 말하는 채권자이거나 임대인은 아닐까? 따뜻한 말 한마디, 전문가의 심리 상담으로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혹은 나도 고독사를 숨기고 싶은 '이웃'이 아닐까?
답을 듣고 싶었는데…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내내 질문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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