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채시험 고사장2019년 10월 모 지상파 방송국 공채 필기시험 고사장
이민호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논란을 보면서 느낀 감정은 숨 막히는 답답함이었다. '또 시험장으로 수많은 경쟁자를 몰아넣겠다'라는 예감. 지난해 가을, 모 지상파 언론사 공채시험을 보러 갔었다.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 한 대학에 마련된 고사장에 도착했다. 강의동이 시험 응시생으로 빼곡했다. 이 언론사는 서류전형을 두지 않아 원서를 내면 모두 시험을 볼 수 있게 했다.
전형에 응시한 수백 명 중에, 필기-역량면접-다면심층면접-최종면접의 문을 거쳐 한 손에 꼽히는 몇 명만 정규직 방송인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응시생들의 뒤통수를 보고 있다가, 그 생각에 이르니 가만히 앉은 내 주변 강의실 벽이 빙빙 몇 바퀴 도는 것 같았다. 어질하고 답답해 복도에 나가 정수기 물로 목을 축이고, 숨도 크게 들이쉬고 정신을 차렸다.
자리에 앉아 1교시 '종합교양 및 분야별 직무 관련 지식' 시험을 치르고, 2교시 논술 시험을 봤다. 1교시는 숨 가쁘게 지문을 읽고 답을 찍어 내리는 전형적인 객관식 시험이었다. 2교시는 두 개의 주제를 주는 작문 시험이었다. "커밍아웃과 함께 동성 결혼을 부모님께 설득하는 편지쓰기", "질병 혹은 철학적 이유로 안락사 동의를 자녀에게 부탁하는 편지쓰기".
둘 중 하나를 골라 원고지를 채워야 했다. 두 번째 지문을 골랐다. 시지프 신화와 소크라테스를 불러내 '쳇바퀴처럼 도는 삶 속에서 너희를 만난 기적에 감사하며, 소크라테스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내용의 편지로 원고지를 채우자 시험이 끝났다.
시험은 공정한가
지상파 방송사들의 광고시장 점유율이 점점 감소하는 추세고 장래가 어둡다지만, 많은 언론계 취준생들은 여전히 기를 쓰고 이곳에 입사하려 한다. 침몰하더라도 화려하고 덩치 큰 타이타닉에 올라타면 구조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높은데 서면 다른 살길이라도, 월급 몇 푼이라도, 거인에 올라탔었다는 후광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일 것이다. 무엇보다 '괜찮은 언론인이 되겠다'는 그 꿈 때문일 테다.
그래서 언론인 지망생들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논술과 작문 스터디를 하며 글을 쓰고, 상식 공부를 하고, 한국어능력시험을 치고,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며 공채시험을 보러 다닌다. 인턴이나 대학원, 학보사, 마이너 언론 등 경험치를 차곡차곡 쌓는 것도 흔한 일이다.
이와 비교하면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신입직원 채용 전형은 웬만한 언론사들 이상으로 복잡하고 요구하는 것도 많다. 사무직을 기준으로, 경험과 경력을 본다는 자기소개서, 어학과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 등을 요구한다. 변호사나 회계사와 같은 전문직 자격증은 난이도로 3단계 등급을 나누고, 등급마다 꼼꼼하게 가점을 붙여 놨다.
공기업이 흔히 보는 전공 NCS 전형에 직무적합도를 묻는 AI면접, 직무역량면접, 인문학 논술시험과 심층면접 등 6단계를 거쳐야 한다.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공부하고 준비할 것도 많고, 시간도 적잖게 걸린다. 이런 공부를 하려면 비용도 많이 든다. 시험 잘 보는 요령을 배우려면 학원은 필수다.
여기서 묻고 싶다. "공기업 '정규직'이 되려면 6단계 시험을 통과하는 길 만이 적합하고, 공정한 과정인가? 언론인이 되는 길이 공채 전형을 통과하는 것이라면, 이런 과정은 언론인이 되는 데 적합한가?"라고 말이다.
이 질문에 "확실히 공정하고 적합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취준생들은 모두 주말마다 열리는 각종 고시와 자격시험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각급 학교를 거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험을 보았던가? 시험 결과로 나를 판단 받다 보니, 이제 시험 결과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판단할 기준도 잃어버린 것인가?
모든 인국공 입사자들은 시험을 봐야 하는 걸까? 그래야 취업준비생들의 박탈감과 상실감은 채워질 수 있는가? "시험이 어쨌든 공정한 것이다"라고 한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자리를 놓고 다투는 수많은 취준생의 아수라장은 계속되어야 한다. 공채 시험, 자격증 시험을 놓고 재수와 삼수를 거듭하는 이들이 주변에 수두룩하다. '정규직'이라는 성취를 위해서라면 돈과 시간과 젊음을 바치는 것이 당연한가?
언제쯤 이 나락에서 구원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