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류시인 이옥봉박연옥이 쓰고 그린 책 '조선의 여류시인 미인도'에 나오는 이옥봉 그림.
배남효
여성에게 폐쇄적이던 봉건시대에도 사랑하는 마음은 참기도 막기도 어려웠던 모양이다. 여성이 먼저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한시들이 있어 흥미롭다.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지만, 용감하게 고백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 앞에는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었던 것 같다.
戀募詩 사모하는 시
馬上誰家白面生 말위에 어느 집 도련님일까
爾來三月不知名 석달이 되도록 이름조차 몰랐네
如今始識金台鉉 지금 비로소 김태현이라 알았는데
細眼長尾暗入情 가는 눈, 긴 눈썹에 남몰래 정들었네
고려말 문인이던 김태현(金台鉉, 1261-1330년)의 젊은 시절에 동문수학한 선배의 여동생이 연모하여 바친 시라고 한다. 그 여인이 누구인지는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선배의 여동생으로 과부가 되어 집에 돌아와 있었다는 이야기만 전해온다.
여인은 김태현이 자주 집에 출입하자, 준수한 모습을 보고 남몰래 반했던 모양이다. 어느새 깊게 사랑하게 되고 참을 수가 없어, 시를 써 창틈으로 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태현이 거부하고 그 집의 출입을 금함으로써,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랑은 당사자들만의 고유한 문제라 어떻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써보낸 여인이면 사랑을 받아줘도 좋을텐데, 거부했다고 하니 안타깝다. 힘들게 고백했는데 실연을 당했으니, 여인의 마음도 무척 아프고 괴로웠을 것이다.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는 이 시를 고려 500년 동안 여인이 쓴 시로 감상할 만한 단 한 수로 꼽았다. 여인이 사랑하는 남자를 묘사하고 마음을 드러내는 솜씨가 아주 탁월한 것이다. 실패로 끝나버린 연애시이지만 감상하는 재미는 아름답고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