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팀이 서울시 소재 장애인 복지시설 49곳의 전체 프로그램 4,394개를 전수조사한 결과 76개만이 고령장애인에 특화된 프로그램이었다. 장애인 복지시설 개수로 따졌을 때 49곳 중 26곳이 고령장애인 특화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유하영
노인복지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건복지부의 '2019년 노인복지시설 현황'에 나와 있는 서울시 소재 노인복지관 82곳을 분석한 결과, 고령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는 곳은 7곳에 불과했다.
다수의 노인복지시설 관계자는 "특화 프로그램을 만들기에는 전문가가 부족하고 공간이 협소해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A 노인복지관은 "지역 사회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의 여가 복지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특정 계층(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노인복지시설 관계자들은 "가까운 곳에 장애인 복지관이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고령 장애인이 이용하기에는 장애인 복지관이 더 적합할 것 같다는 뜻이었다.
노인복지관 관계자의 말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여러 장애인 복지관에 전화를 걸었다. 취재팀이 '중증장애를 가진 60대 후반의 할머니가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냐'고 묻자 관계자는 "신청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막상 적합한 프로그램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대부분 2~3개의 프로그램 추천에 그쳤다. 그마저도 고령 장애인에게 적합한지 의문이 들었다.
B 장애인복지관은 "할머니가 만들기 활동을 원하시면 진흙 수업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20대가 수강하고 있는 수업이긴 하다"고 말했다. C 장애인복지관 역시 "고령이어도 수업 신청은 가능하다"고 했지만 "사실 적합한 프로그램이 많지는 않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원한다면 노인복지관이 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령 장애인은 집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령이 증가할수록 '장애인복지 관련 사업 실시기관 이용률'이 감소했다. 특히 65세 이상의 경우 17세 이하 이용률의 1/4도 안 되는 수준으로 급감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집에서 여가를 보내고 있다.
2017년 한국장애인개발원의 '고령 장애인의 욕구조사 및 중장기 정책방향' 보고서를 보면 '여가 문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고령 장애인의 49.1%가 TV 시청을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고령 장애인이 원하는 생활은 사뭇 다르다.
2018년 경기도 지체장애인협회의 연구에 따르면 고령 장애인은 활기찬 노후를 즐길 방법으로 '다양한 활동에서 경험하는 재미와 즐거움', '이용 가능한 서비스의 선택'으로 뽑았다. 즉, 고령 장애인은 욕구와 거리가 있는 여가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이수연 연구원은 "장애인복지관과 노인복지관 내 고령 장애인 욕구를 반영한 프로그램 개발과 문화여가시설에는 장애 특화 전문가를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목소리만 계속될 뿐... 귀 닫은 정부 기관
고령 장애인이 배제되는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계속돼왔었다. 지난해 9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연령제한 규정폐지'를 주장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두 단체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4일 국민연금공단 사옥에서는 '장애인 활동지원 만 65세 연령제한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시위에 활발히 참여하는 S씨는 계속 싸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장애인 차별 철폐 연대 등 장애인 단체들과 함께 싸워서 빨리 제도를 바꿀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앞으로도 시위에 계속 참여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관련 기관에서도 논의가 이뤄져 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장애인개발원, 한국사회정책학회 등은 고령 장애인의 욕구 및 실태조사와 복지 정책 제언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외에도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에서는 '고령장애인 자조모임 활성화' '고령 장애인의 특성에 맞는 평생학습 기회 제공'을 제안하는 정책리포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와 같은 고령 장애인 당사자와 관련 단체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실질적으로 반영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김훈 정책연구원은 "고령 장애인 관련 보고서가 발간되면 이걸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문제 제기만으로 끝나버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서비스에 어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가야 하는지 파악하고 실제 집행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일부 지역 단위에서 고령 장애인을 고려하려는 시도는 있다. 루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노승현 교수는 "경기도의회의 경우 고령 장애인 지원조례를 준비하고 있고, 서울시는 시범사업으로 중·고령 발달장애인 자활꿈터를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이는 지엽적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노 교수는 "보다 거시적인 접근과 정책적 지원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9 보건복지부 소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안'에도 고령 장애인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있었다. 참여연대의 장애인복지 분야 예산안 분석에 따르면 2019년 장애인 복지예산에서 장애인 선택적 복지가 40.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 선택적 복지 영역의 중심 사업이다. 활동지원서비스는 많은 예산이 투입되지만 그 혜택이 고령 장애인에게는 돌아가지 않고 있다. 만 65세 이상이 되면 개인의 의지에 상관없이 활동서비스 대상 자격을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예산안에 나와 있는 선택적 복지의 하위 영역에서도 고령 장애인은 배제돼 있다. 장애인 선택적 복지의 일환으로 장애 아동 가족, 여성장애인, 발달장애인지원 사업이 각각 구분되어 있지만 같은 사회적 약자인 고령 장애인에 대한 사업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고령 장애인에 대한 특화된 정책적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고령 장애인의 목소리 외면하지 말아야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잘살 수 있게 세상이 변해야 해요. 이 세상이 장애 있는 몸도 살아갈 수 있도록 변해야 하는 거죠."
K씨가 야학을 다니며 깨달은 점이다. K씨에게는 요양보다 외부 활동이 필요하다. 아직 더 공부하고 싶다. 그는 "아직도 이 세상에는 바꿀 게 많다고 생각해서, 세상을 좀 바꿔보고 싶어서 즐겁게 공부한다"고 했다.
현행 제도는 S씨와 K씨와 같은 이들의 일상을 억압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서비스로 전환되면 활동지원 시간이 줄어들고, 제도의 목적 자체가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와는 달라 외부활동이 힘들어진다. 현재 복지시설의 프로그램도 S씨와 K씨를 외면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고령 장애인이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는 곳이 극히 드물다.
그러나 이런 부당함에 대해 고령 장애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고령 장애인에게 선택권이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낼 뿐이다. 장애와 노화라는 무거운 두 짐을 떠안고 사회의 관심에서도 멀어진 고령 장애인.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수많은 S씨와 K씨들의 이야기를 계속 외면한다면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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