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감옥쿠바에 구금되기 전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정힘찬
남아공 미국 영사관에서 미국 여행 비자인 B1/B2와 피시티 퍼밋을 받고 쿠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만5000km, 13시간 비행 끝에 쿠바 수도가 있는 아바나 공항에 도착했다. 그, 런, 데! 땡전 한 푼이 없다.
쿠바에서는 입국 비자를 공항에서 돈 내고 사야 하는데 준비해 뒀던 350달러가 종적을 감춘 것이었다. 범인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호스텔 청소부인 것 같았다. 나를 응큼한 눈으로 바라보더라니. 룸메이트들이 그 청소부를 조심하라고 나에게 일러주었건만 난 그 말을 귓등으로 들은 것이다.
넋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공항 직원에게 은행 카드로 돈을 뽑아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곱슬머리를 볶아 브로콜리처럼 만든 여성 직원은 흔쾌히 허락했다. 현금 인출기를 찾아갔다. 그런데 돈이 뽑히지 않았다. 공항 직원은 "쿠바가 미국과 사이가 안 좋아서 은행 거래가 안 되는 걸 거야"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내 카드는 미국 은행인 시티뱅크였다.
그러고는 쿠바 이민국 직원에게 끌려갔다. 다른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아 보겠다, 다른 카드로 돈을 뽑아보겠다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끌려간 곳은 감옥처럼 생긴 좁은 조사실이었다. 질문 세례가 시작됐다. 여권에 입출국 도장이 왜 이렇게 많냐, 뭐 하는 사람이냐, 여행을 왜 하냐 이것저것 따져 물었다.
질문 농도는 짙어졌다. 이민국 직원은 내 휴대전화를 빼앗아 사진첩을 열었다. 그 안에는 여행하며 찍은 사진과 여자 친구 사진이 있었다. 그러더니 한국 여자는 어떤 성향이냐, 여자 친구와는 어디서 데이트 하냐, 여행을 같이 했냐는 등 사생활을 캐물었다.
자존심이 팍 상했다. 묵비권을 행사하고 싶었지만 총 든 사내 두 명이 옆에 떡 하니 서 있었다. 심지어 항문에 마약을 숨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 옷을 홀딱 벗게 하고는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해 시켰다.
난, 작은 창이 있는 1평 남짓한 곳에 들어갔다. 그곳 직원들은 '구금 시설(Detainment Center)'이라고 말했다. 허름하고 지저분한 1인용 침대와 무릎 높이의 조그마한 문이 달린 냄새 나는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바닥에는 죽은 바퀴벌레, 천장 구석에는 거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피시티 시작부터 '망삘(망한 느낌)'이었다.
감옥에 사흘 동안 갇혀 있은 뒤 한국으로 강제 출국됐다. 한국에 돌아오니 친구들은 출소를 축하한다며 생두부를 내 입에 마구 집어 넣었다. 피시티 전 2주 휴가를 결국 한국에서 보냈다.
그렇게 다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쿠바가 생각이 나 가슴이 쫄렸지만 미국은 문을 열어주었다. 2017년 4월 23일 오전 6시. 미리 연락해 뒀던 '트레일 엔젤' 스콧을 만나 그의 차를 타고 멕시코 국경 마을인 캠포로 갔다. 피시티에서는 하이커를 돕는 사람을 '트레일 엔젤'이라고 부른다.
근육통은 참아도 더러운 건 못 참는다
미국 캘리포니아 4월 날씨는 한국 봄과 달랐다. 팍삭 마른 날씨에 태양은 온몸의 마지막 수분 한 방울까지도 빼앗으려 이글거렸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불결함이었다. 피시티를 걷는 첫날부터 찐득한 땀방울이 온몸을 뒤덮었다. 손톱과 발톱, 살결이 접힌 주름마다 시커먼 때가 꼈다.
머리는 기름져 질펀하게 늘어붙었다. 텐트 문을 잠시만 열어도 모래가 가득 들어왔다. 더욱이 지저분한 몰골로 자야 하는 게 가장 큰 충격이었다. 그나마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하이킹을 끝내고 온수로 몸을 씻고 포근한 침대에서 잠을 잤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