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헌
평가위원들이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정성 지표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 대학교육연구소는 논평에서 "모의평가 결과 교원확보율, 교육비 환원율, 법정부담금 부담률 등에서 수도권대학은 5개 권역 중 중하위였다"며 "수도권대학 여건이 좋지 않았음에도 역량진단 결과가 '월등히' 좋았다는 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교원확보율, 교육비 환원율, 법정부담금 부담률 등 기본지표가 최하위인 대학이 자율개선대학에 선정됐다"며 구조조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대학 기본역량 결과가 지방대의 정원 감소에 직격탄을 안긴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기본역량진단의 결과에 따라 대학들은 2021년까지 입학정원을 총 1만315명을 감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서울 지역 4년제 대학은 앞으로 3년 간 입학정원을 238명만 감축하면 된다.
반면 서울(7만 3872명)과 학생 수가 비슷한 광역시(7만 3013명)에서는 입학정원 1191명을 감축해야 한다. 이는 서울의 5배에 달하는 수치다. 서울 학생 수의 1.6배인 비 광역시(12만 명)에서는 3900명을 감축해야 한다. 서울보다 16배나 많다. 서울보다 지방에서, 지방의 광역시보다 비 광역시에서 더 많은 정원이 감축되고 있다.
경제논리로 대학을 줄세울 수 있을까
물론 시장경제 논리를 충실히 따른다면 경쟁력이 낮은 대학부터 퇴출하는 게 맞다. 실제로 재정구조가 열악한 대학이 지방에 몰려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승자독식' 형태의 평가방식이 대학의 경쟁력을 적절히 평가할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대학 지표에는 수많은 외부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지방대학들도 지역적 한계 탓에 성장동력을 잃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취업률 같은 지표는 대학 주변에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있는지가 대학의 자구적 노력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교육부도 평가 과정에서 이런 우려를 일부 인정해 지방대학에 일부 완화된 평가 기준을 적용했다. 예를 들어 신입생 충원율의 경우 수도권 대학은 99.517%이상이 만점인데, 지방 대학은 98.774%만 충족하면 된다. 그러나 대학을 단순히 '수도권' 대 '비수도권'으로 양분해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지역별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대학의 지역 사회 기여도 역시 중요한 요소다. 서울과 달리 지방 중소도시는 소수의 대학에 지역 경제를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다. 지방대학이 정원을 줄이면 해당 지역 주민들의 재정에도 상당한 타격이 간다. 한국은행 강릉본부에 따르면 강릉시 소재 대학들의 학생 수 감소로 강릉시의 연간 소비지출은 무려 278억 원이 줄었다. 대학 구조조정이 지방을 중심으로 이뤄질 경우 지방 경제의 자생력 역시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지방 대학들의 경쟁력 약화는 일부 부실 대학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 서울권 대학들과 어깨를 견줬던 경북대는 2015년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C등급(90위권)을 받았다. 정성평가와 취업률 등에 발목을 잡혔다. 경북대는 지방거점 국립대학 중에서도 가장 경쟁력있던 대학 중 하나라 충격은 더 컸다. 구조조정의 여파로 경북대는 정원 7%를 감축했다. 같은 기간 서울 주요 대학(입학 정원 3천 명 이상 9개교)의 평균 정원 감축률은 1.1%다.
한 번 대학 정원이 감소하면 대학이 다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한국 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은 세계 최고다. 2016년 사립대 등록금 의존율은 평균 62.1%로, 미국 사립대 등록금 의존율 33.3%와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된다. 대학의 재정구조가 등록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에서 대학 정원이 감축되면 대학은 경쟁력 저하의 악순환에 빠질 공산이 크다. 부실대학 딱지가 붙은 학교는 학생들도 기피한다. 대학이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선 돈이 필요한데 막상 곳간은 텅 비어있다. 결국 학생이 주니 등록금 수입이 줄고, 수입이 없으니 투자할 재원이 부족하고, 투자를 안 하니 다시 강제로 정원을 줄이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최근 정부의 구조조정이 지방대를 이런 악순환으로 빠트리는 형국이다.
대학연구네트워크 이우창 연구위원은 3일 기자와 서면 인터뷰에서 "지금 지방은 '서울의 삶을 추구하지만 서울이 못 되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각 지방대학을 특화할 수 있는 규범적인 상을 제시해야 한다. 지방대학 스스로 특화가 안 된다면 정부의 인위적인 노력으로라도 장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방대 몰락,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지난 수십 년간 정부의 대학 정책은 지나치게 근시안적이었다. 대학이 부족해 보일 땐 마구잡이로 대학을 늘렸다가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이 너무 많아지자 뒤늦게 칼을 빼 들었다. 서로 사정이 다른 대학에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면서 지역 발전 같은 가치는 설 곳을 잃었다. 대신 자리를 잡은 것이 무한경쟁 논리였다.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는 한국 사회의 대학의 서울 편중 현상이다. 국토의 0.6%밖에 되지 않는 서울에 20%가 넘는 대학생이 몰려 있다. 정부의 대학 정원 구조조정이 지방을 중심으로 진행되면 이 비율은 더 늘어날 것이다. 대학의 서울 초 집중화 현상이 지역 사회에 가져올 여파는 어쩌면 회복 불가능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면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요구되는 지금이 여태까지의 잘못된 교육정책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다. 인구 변화에 대응하면서도 지역의 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진짜 '백년지대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획 / 지방대가 무너진다]
① 1996년 YS가 쏜 화살, '지방대 소멸'로 돌아오다 ☞ http://omn.kr/1jdl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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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기자가 되길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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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택은 '인 서울'이 누리고 피해는 '지방대'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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