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적이 들어가지 않으면 할 필요없다는 인식은 도덕성, 도전 정신을 약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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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학기제를 도입한 취지는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사들 재교육시간도 너무 짧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너무 적은 상태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학교와 지역 사회를 연결하여 지역 사회의 회사나 다양한 직업들을 연결해 주는 진로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가끔 공문을 보면 게임 회사나 언론 매체에서 진로탐방을 위해 신청 기한을 주는데 너무 빨리 마감이 되고 거리상 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프로그램이 더욱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교사도 모르는 직업이 많고 새로운 직업을 매번 공부할 수는 없다. 다양한 직업을 소개할 수 있도록 지역 사회 혹은 기업이 학생들에게 잠깐이라도 학생들이 그 분야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긴다면 매우 좋을 것 같다.
불가능하더라도 그 불가능함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아주 작은 가능성에라도 방향을 논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성적에 들어가지 않으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꿀 필요성도 느낀다. 성적에 들어가지 않으면 할 필요없다는 인식은 도덕성, 도전 정신을 약화시킨다. 성적에 들어가지 않기에 부담없이 하고 싶은 것을 도전해 볼 수 있는 시간인데 너무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채찍질하는 사회가 많이 아쉽다.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②] 쉴 시간이 없다
둘째, 아이들의 삶에는 쉼이 없다.
"선생님 쉬고 싶어요."
"학교갔다가 학원을 갔다오면 11시가 넘어요. 눈을 뜨면 또 학교를 가야 하는 현실이 너무 슬퍼요."
임용고시를 3번이나 떨어지고 4번째 붙어서 학교에 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교사를 선호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하고 첫 달은 매일 매일 강제 야근이었다. 학생 상담을 위해서 학교가 선택한 일이었는데, 집이 멀어서 내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항상 오후 10시 30분이었다. 그리고 오전 7시에 집을 나서면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남들에 비해 퇴근이 빠를 수는 있지만, 내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1000명이 넘는다. 특히 아이들의 말을 듣다보면 내가 감정받이가 되어서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한다. 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너무 한정적이었고 아이들이 다치고 싸우고 그것을 조정하다보면 왜 이렇게 "죄송합니다"는 말을 많이 해야 하는지, 무엇이 미안한지도 모른 채 그 말을 되새겼다.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관계 조정을 못해 많이 울었고 이 길을 선택한 내가 너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 사이에서 휴식이 진정 필요했다. 방학이 오니 보충 수업을 준비해야 했고 일주일의 여유 시간이 생겼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잤다. 이게 나의 삶이었을까? 아니, 아이들의 삶이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집에 오면 TV도 보고 만화책도 보고 놀러도 다녔다. 나는 친구들과 악기도 배웠고 어머니와 드라마를 보면서 함께 욕도 하고 웃기도 하였다. 그런데 내가 교사가 된 다음 아이들의 삶은 내가 살던 그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말 지쳤고 도망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이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하루에 7시간을 수업을 듣고 학원을 가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상태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종착지가 없다.
그러나 점점 학교가 바뀌고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상담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다. 또 야간 자율학습이 폐지되면서 내 삶은 조금 더 달라졌다. 수업에 열중할 수 있게 되었고 수업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이 수업을 재미있다고 할 때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야간자율학습 대신 학원을 다니고 더욱더 경쟁이 몰려가고 있다. 이게 평생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지치고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말 끔찍하다고 느낀다. 쉬면 경쟁에 뒤처진다는데 유치원부터 영어를 배우고 특별 교육을 한다는 것이 너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