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심의 결과가 발표된 14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연합뉴스
지난 14일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2015년에 이루어진 관계회사로의 분류 변경 및 4조 5천억 원의 이익을 잡은 것이 고의분식이라는 내용이었다. 7월에 내려졌던 2014년 콜옵션 공시 누락이 고의분식이라는 것과 함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의 두 가지 쟁점 모두에 대해 고의분식이라는 결론이 난 것이다.
기업의 장부가 제대로 작성되었는지 검증하는 절차는 크게 보면 둘로 나눌 수 있다. 회계법인이 장부가 제대로 되었는지 '감사(audit)'하는 절차와 회계법인의 감사업무가 제대로 수행되었는지 증권선물위원회가 사후에 감독하는 '감리(audit review)'가 그것이다.
증권선물위원회의 감리는 수사가 아니다. 압수수색과 같은 절차가 불가능하고, 회사가 동의해 제출한 자료에 기초하여 절차를 진행한다. 그래서 보통 감리 결과로 나오는 '고의'는 '나쁜 의도가 있다'는 고의가 아니라 '잘못된 회계 처리인 줄 알고 있었다'의 고의인 경우가 많다. 수사하지 않고 의도를 밝혀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는 일반적인 것과 상황이 좀 달랐다. 11월 초 재경팀 내부문건이 공개되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내부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드러났기 때문이다. 분식의 의도 또는 동기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들이 나온 것이다.
의도마저 드러난 삼성바이오로직스 고의분식
내부문건을 통해 드러난 직접적인 분식의 의도 또는 동기는 자기자본 잠식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자기자본 잠식이 이루어지면 상장이나 추가차입 등이 불가능하다고 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기자본 잠식을 피하고자 했다.
내부문건에 드러난 그 방법들은 법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바이오젠과의 계약서를 소급하여 수정하거나,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평가액을 자기자본 잠식이 발생하지 않을 정도의 숫자로 조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위의 방법과 함께 고려된 것이 실제 실행된 방안으로, 종속회사를 관계회사로 임의로 변경하여 4조 5천억 원의 이익을 잡는 방안이었다.
증권선물위원회가 감리 결과에 대한 처분을 내릴 때, 자기자본을 잠식상태(-)에서 양(+)의 수치로 만드는 것이 가중처벌되는 대상임을 고려하면, 가장 나쁜 형태의 분식회계 동기가 드러난 셈이다.
이렇게 모든 쟁점에 대해 고의분식이라는 결론이 나고 그 동기마저 드러나자, 보수언론과 경제신문의 타깃이 변경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은 명백할지 몰라도, 그것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방어선을 옮기고 있다. 시점상으로 합병은 2015년 5월에 진행되었고, 결산은 2015년 12월 말 기준이니 연결될 수가 없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연결고리를 짚어보자.
[사전적 연결고리] 콜옵션 누락
고의분식으로 결정된 콜옵션 누락은 2014년 말 결산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보고서가 공시된 시점은 2015년 4월이었다. 제일모직 상장이 2014년 12월에 진행되었으므로, 2015년 4월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가시화된 시점이었다.
삼성그룹이 설명하는 제일모직 가치의 핵심 중 하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였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90% 지분을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가 핵심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직접 수행하는 위탁생산(CMO)보다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수행하는 바이오시밀러 개발이 좀 더 부가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콜옵션의 행사조건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증권사들은 삼성바이오에피스 가치의 90%를 그대로 삼성바이오로직스 가치에 가산했다. 만약, 나중에 알려진대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주식 40%를 헐값에 바이오젠에 넘겨야 한다는 사실이 주식시장에 알려졌더라면 제일모직의 주가는 지금과 달랐을 수 있다. 나아가 합병 결정에 찬성한 국민연금의 판단도 달랐을 것이다. 합병비율의 적정성을 판단하기 위한 국민연금의 계산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 40%를 빼야 하기 때문이다.
즉, 콜옵션 누락 고의분식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직전이라는 아주 민감한 시점에 이루어졌다. 분식회계와 합병 사이에 사전적인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다.
[사후적 연결고리] 삼성물산 합병 회계
사후적인 연결고리도 있다. 이 사후적인 연결고리는 바로 연결되지 않고 삼성물산 합병 회계 처리를 거쳐서 연결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기자본 잠식에 빠지게 만든 원인은 합병 회계를 할 때 통합 삼성물산 입장에서 평가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 때문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6.9조 원, 삼성바이오에피스를 5.3조 원, 콜옵션 부채를 1.8조 원으로 평가했는데, 그 평가액을 그대로 삼성바이오로직스 장부에 반영하다 보니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기자본 잠식에 빠졌다.
11월 19일 자 <한겨레> 기사 "
삼성물산이 꾸린 TF '삼바 회계분식' 주도했다"에 언급된 문건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평가와 관련하여 나오는 '상쇄'라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