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중인 은유 작가 감수성을 키우는 다섯 가지 방법에 대해 강연 중이다.
시민기획단 나침반
첫째는 가만히 뭔가를 오롯이 바라보기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이란 책을 쓴 이옥남 어르신의 글은 오롯이 바라보는 힘을 보여준다. 남편과 시부모님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이 글씨를 안다는 사실조차 말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도라지 팔아 공책을 사서 써 내려간 일기를 시작으로 꼬박 30년 동안 글을 썼다.
온몸을 쥐어짜듯 울어대는 새를 보며 사람이 일하는 것 못지않게 새도 참 힘들게 산다는 걸 알게 됐다는 글은, 누구보다 자연을 오래 바라본 이의 통찰을 보여준다. 자연과 자신의 삶을 연결해 생각하는 힘은 바로 '가만히', '오롯이'에서 나온다.
감수성을 키우는 두 번째 방법은 영화 보기다.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들어가 보는 연습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은유 작가에게는 영화 보기다. 단순한 감상보다 영화가 보여주는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답하며 영화를 본다.
최근엔 이언 매큐언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체실 비치에서>를 보며 진정한 사랑에 관해 묻고,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에서는 청년 빈곤과 행복한 삶에 관해 생각했다. 평소 생활에서 붙잡지 못한 질문을 영화를 통해서 하게 된다. 다른 상황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 그것은 곧 감응력이며 감수성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
세 번째 방법은 시 읽기다. 6년 전은 작가가 개인적으로 힘든 시절이었다. 토요일 오후 6시에 시 세미나를 했는데 그때 함께 읽었던 시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천천히 시를 읊으며 무작정 시를 이해해 보려 했던 그 시간은, 지금까지 인생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순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암호를 풀 듯 시를 해석하며 언어에 집중하다 보니, 말도 안 된다 하고 싶은 상황이나 사람에 대해서도 되짚고 이해하려는 맘이 생긴다.
네 번째는 노인, 성 소수자, 이주 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편견 없이 바라보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공부를 해야 한다. 발달 장애인 동생을 시설 밖으로 데리고 나와 함께 사는 길을 찾고 있는 장혜영 작가의 <어른이 되면>을 읽어보길 권한다. (장혜영 감독은 10월 31일 '감수성 올림' 강연 출연자로 초대돼 강연한다.)
다섯 번째 감수성을 키우는 방법은 경청하기다. 최근 가난한 청소년 노동자 이야기를 글로 담고 있는데, 노동 현장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다 사망에 이른 억울한 사연을 유가족에게서 듣다 보면, 화도 나고 뭐라 이야기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난한 사람은 자식을 낳으면 안 된다. 그 자식들은 다 죽는다.' 한 유가족 아버님이 이런 말을 털어놓으면 마음이 너무 아파 먹먹하다. 그런 순간에 그저 듣는다. 뭐라 해석하거나 감정을 더하지 않고 들으면 상대가 가끔 들어줘서 고맙다. 말하고 나니 후련하다는 얘길 한다. 아프고 속상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수성은 자란다.
감수성을 키우는 일은 대부분 자본주의 속성에서 벗어난 일이다. 사회적인 명예나 부를 쌓는 일과 역행하는 일들인데, 대신에 자신을 잃지 않게끔 지켜준다.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고 적응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사라지고 없다. 감수성이 옅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