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망원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시민들. 망원시장 상인회는 이번 추석을 시작으로 두 달 동안 장을 본 물품을 담을 수 있는 장바구니 등 용기를 가져오는 고객에게 지역화폐로 인센티브를 주는 캠페인을 진행한다.
연합뉴스
따지고 보면 망원시장이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단체행동이 어려운 자영업의 생래를 거스르고 모두가 힘을 합쳐 대형마트의 입점을 막아낸 투쟁이었다. "합정동 홈플러스 개점에 반대해 '다 문 닫고 집회'와 '다 촛불 켜고 장사'로 전국 최초로 유통 재벌에 맞서 따낸 절반의 승리(서문 중에서)"가 있었던 것이다. 전국의 영세 자영업자를 대표하는 시의원을 배출했고, 이 유례없는 사례는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연대와 대안의 모델로 자리잡았다.
"무한 경쟁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어려운 거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죠. 경쟁하는 입장에서는 돈이 있는 사람들한테 돈이 없는 사람들은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잖아요. 그러면 누구를 위한 정책이냐는 거죠. 대기업만 먹고살 게 아니라 국민도 먹고살게 열어줘야 하는 게 국가 아니에요? 다 대기업이 뺏어가버리면 서민들은 뭘 먹고 살라는거야. 대기업 기생충처럼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잖아요." - 종로연떡방 황성연 사장 인터뷰 중(87쪽).
모두가 힘을 합쳐 절반의 승리를 거뒀지만, 망원시장이 매스컴을 탈수록 임대료가 올랐고 지역주민보다 외지인의 유입이 늘어났으며 1인가구의 증가로 식생활의 변화가 잇따랐다. 이런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공동의 노력(상인회)과 개개인의 성실함으로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퇴직금이나 연금 등의 보장 없이 다음 달 치의 수입을 헤아리는 삶이 녹록할 리 없다.
"망원동이 의외로 이렇게 핫한 시장이 됐잖아요. 주변에 망리단길이 생기고 이러면서 집값이 많이 폭등했대요. 여기 가겟세도 이번달에 20퍼센트 이상 올랐어. (중략) 근데 장사는 더 안 돼요. 우리끼리 하는 얘기가 그래. '사람은 참 많은데 손님이 없다' (중략) '아 좀 뭔가 변화를 해야겠다' 하는데도 쉽게 안 되는 거야. (중략) 중앙대 최고경영자 과정에 다녀요. 여기 시장 분들이랑 같이 가는데, 매주 여러 분야 교수님들이 오셔서 강의를 해주셔요. 그런 게 계기가 돼서 나한테 발전이 되지. 근데 여기서 그냥 꾸준히 장사가 잘 되길 바라는 게 솔직한 마음이에요." - 진양수산 이양희 사장 인터뷰 중(239~240).
나와 이웃들은 망원(&월드컵)시장에서 상인들과 얼굴을 트고 정직한 물건을 정당한 가격에 치르는 '얼굴 있는 거래'에 익숙해지고 있다. 비혼가구인 내가 "엄마"라느니 하는 호칭에 민망할 때가 있지만, 시장도 변화해 가는 와중이고 이제는 카드를 내밀어도 타박을 듣지 않으며 구매 후 배달서비스 등으로 편리해졌다. 그리고 이제 공동의 적, '망리단길'이라는 유령에 대처해야 하는 난제가 시장 상인들과 지역주민들의 과제가 되었다.
80년대까지 집중호우로 물에 잠기던 서민동네 망원은 뜻하지 않게 핫플레이스가 되고 젠트리피케이션의 중심이 되었지만, 이곳은 여전히 많은 서민의 주거지이자 일터이다. 내게는 오랫동안 거주한 서울의 고향 같은 동네기도 하다.
고단한 명절이지만 주 6일 근무하는 상인들은 1년에 두 차례의 달콤한 휴가를 즐기는 중이다. 이곳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경제의 가능성을 다시 목도하기를 바란다. 전통시장에서의 구매를 더 많이 하리라는 다짐밖에는 할 수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망리단길'이라는 이름 사용하지 않기 운동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