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나에게 관심 없다면? 나도 관심 끄면 그만

불공평한 인간관계를 만들지 않는 법

등록 2018.09.11 14:31수정 2018.09.1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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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마음을 잘 여는 편이어서 낯을 가리지 않는다. 먼저 마음을 열어야 상대방도 마음을 연다고 생각하는 주의여서, 엄청난 비밀이 아닌 이상 거의 다 털어놓는다. 나의 역사와 현재, 미래까지 모두 다.


그런데 과연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대하는 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모든 이야기와 속사정까지 말해야 하는 건 아닌데. 몇 십 년을 오픈 마인드로 살다가 번뜩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뜬금없이 어떤 전화를 받고 난 이후부터였다.

나는 너를 모르는데, 너는 나를 알고 싶다고?
 
 나는 그들을 모르는데, 그들은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나는 그들을 모르는데, 그들은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Pixabay

이름을 개명하고 2년쯤 지난 어느 날, 마케팅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속의 여자가 묻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개명 전의 내 이름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놀란 이유는 단 한 가지, 개인정보 보유기간 때문이었다.

이벤트 경품을 받고 싶은 마음에 핸드폰 번호 등을 함부로 적어 제출한 탓도 있지만, 사실 기업에서 개인정보를 몇 년 동안이나 보유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몇 개월이 지나면 당연히 기업에서 알아서 폐기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을 느끼니, 일상에서 그와 관련된 것들만 보이기 시작했다. 주거래 은행만 이용하다 보니 다른 은행은 몇 년 동안 이용하지 않아서 해당 은행의 카드와 계좌를 모두 해지하려 한 적이 있다. 우선 전화로 카드부터 해지했다.

"이거 해지하고 난 후에도 제 개인정보는 완벽하게 삭제되는 거 맞죠?"
"아니요 고객님. 해지하셨어도 기본 5년 동안은 보유하고, 5년이 지나야 삭제합니다."



사실 그 은행은 고객정보를 과도하게 수집 보관해서 신문기사로까지 보도되었던 곳이었다.

"제가 이용할 뜻이 전혀 없어 해지한 거고 앞으로도 이용할 뜻이 없다는데, 왜 그런 고객의 개인정보를 5년이나 보유하고 있겠다는 거죠?"
"아..."



상담사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더니 잠시 침묵이 흐른다. 이런 상황이 있을 때 대처하라고 만든 매뉴얼이 있는 모양인지 법조문을 읊조리기 시작한다. 법의 뜻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일단 법을 들이민다.

이것저것 물으면서도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런 사항을 만들고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진 상황이 잘못된 거지, 말단 사원들이 무슨 죄인가. 그리고 내 개인정보를 이곳저곳에 활용하라고 제공한 건 나 자신이니까.

타인이 모두 내 마음 같지는 않다

나는 그들을 모르는데, 그들은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어떤 사람이 생각났다. 나는 그녀를 잘 모르는데, 그녀는 나를 잘 안다. 친해지려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과도하게 많이 했기 때문이다.

한 살 위 직장동료였다. 친해지기 위해 거의 모든 이야기를 했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내가 마음을 열고 다가갔는데, 오히려 나를 싫어해서 뒤에서 험담을 하고 다녔다는 사실도 알았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었다. 불공평한 인간관계를 만든 건 나 자신이었다.

내가 기업들에게 개인정보를 아무 생각 없이 알려줬던 것처럼, 성향이 맞지 않아 나에게 관심 없는 타인에게 내 사생활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잘못을 저질렀다.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이라면 그 이야기를 토대로 마음을 나누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 이야기를 가십거리로 여기며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뿐이라는 걸 몰랐던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판옵티콘을 만들지는 말자

'판옵티콘'이라는 교도소 건물이 있다. 교도소 중심에 위치한 감시자들은 외곽에 위치한 수용자들을 감시할 수 있다. 하지만 외곽에 있는 수용자들은 중심에 있는 감시자들을 전혀 볼 수 없다. 감시자들이 위치한 중심이 어둡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용자들은 감시자들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인터넷에서 이벤트에 응모할 때, 사이트에 가입할 때 너무 많은 정보를 불필요하게 요구한다며 날을 세우는데, 정작 인터넷보다 훨씬 내 삶과 밀접한 타인에게는 내 모든 정보를 있는 그대로 노출했다. 그 사람이 나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정보를 알려주어야 하겠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나를 감출 필요도 있었는데.

카카오톡의 수많은 친구들이 양질의 인간관계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나는 알아야 했다. 나에 대해 관심 없는 타인이 나에 대해 자세히 알 권리가 없다는 걸. 그러니 우리, 인간관계에서 스스로 판옵티콘의 수용자가 되지는 말자.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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