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권은 선생님에게만 있는 걸까?
김재훈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학교 홈페이지를 찾아서 글을 쓰려고 하는 순간, 내가 무슨 자격으로 글을 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들도 가만히 있는데 말이죠. 아동 권리 옹호 기관에 있는 지인이 생각났습니다. 이 일은 아동의 권리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고 제3자의 시각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 사건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어떤지, 이 일을 어떻게 푸는 것이 현명한지 물었습니다.
"그 선생님의 입장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한 아이를 화장실에 보내면 너도 나도 화장실 보내달라고 그런다고 하더라.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기가 힘들대. 그리고 원칙이 있잖아. 쉬는 시간에는 화장실을 가거나 하고, 수업 시간에는 공부를 한다. 이런 원칙을 어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 그리고 오줌을 얼마나 참았는지, 오줌을 참은 것 때문에 애가 아픈 건지 확실히 알 수 없잖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해.""아니, 애들이 오줌 마렵다는데 보내주는 게 어려워? 한 아이를 보냈다고 해서 다른 아이들도 막 간다고 하는 건 아니잖아. 원칙이 사람보다 중요해? 얘는 초등학교 1학년이야. 몸이 아픈 아이였다고. 그만 이야기하자. 끊어."지인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지만 전 섭섭했습니다.
'네 가족이 아니니까 그렇게 말 할 수 있지. 원칙? 누구를 위한 원칙인데? 융통성도 있어야지.' 이런 좁은 생각도 들었지요. 한두 시간이 흐르자 흥분은 가라 앉았습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한 명의 선생님이 이십여 명의 아이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옳은 걸까?' 지난 번 제가 쓴 '합죽이가 됩시다, 합'이라는 옳지 못한 표현을 쓰는 선생님에 대한 기사에 달린 네티즌의 댓글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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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죽이가 됩시다" 선생님, 이 말의 뜻을 아시나요?]
"기자는 조카 5명이라도 조용히 시켜 봤나... 500명, 1000명 조용히 시키는 방법이나 알고서 그러는지.. 너무 확대 해석으로. 다 싸잡아 나쁜 사람 만드는 듯..."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에게 좋은 방법은 무엇일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누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나, 애는 좀 어때? 괜찮아? 엄마한테 들었어. 사실이야?""응... 애는 괜찮아졌는데, 이번에는 둘째가 독감에 걸렸어. 열이 팔팔 끓어. 큰일이야. 처음 아팠던 날, 학교에 데리러 갔는데 눈이 퉁퉁 부어 있더라고.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니까, 쉬는 시간에 잠들었는데 깨니까 수업 시작했었나 봐.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선생님한테 말했는데, 쉬는 시간에 뭐 했냐고 하면서 안 보내줬다고 하더라고.""아... 그게 진짜였구나. 아... 정말 어이가 없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어?""선생님한테 전화를 했지. 왜 우리 애 화장실 안 보내주셨냐고, 이렇게 물어보려다가 괜히 애한테 안 좋은 영향 끼칠까 봐... 혹시 오늘 우리 애 무슨 일 없었냐고 돌려서 물어봤어. 그러니까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더 안 묻고 애가 아파서 내일 학교를 못 갈 것 같다고 얘기하고 끊었지.""와... 진짜... 화나네.""그치? 그런데 어떡하겠어, 내가. 오줌 안 싼 게 다행이지. 같은 반 친구 엄마한테 들었는데 자기 딸은 바지에 오줌을 쌌었대. 정말 속상했지만 담임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잘 봐달라고 그랬대. 그러면서 나보고도 선생님한테 이야기해 보라고 했는데... 난 잘 모르겠어. 애한테 계속 물어보기도 좀 그래. 얘는 선생님 좋아하거든."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 누나가 왜 일을 그만두고 싶은지, 왜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다른 애들 신경 쓰느라 정작 자신의 애를 신경 쓰지 못하는 현실이 많이 힘들겠다 싶었습니다.
주말이 끝나고 짐을 챙겨서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내내 이 일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무엇을 위해 원칙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수업 시간에 화장실을 갈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요? 그 원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