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부모모임 정기모임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성소수자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성소수자 부모를 위한 가이드북>을 제작하여 배포하고 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해"
위니: "오소리 님은 아직 커밍아웃을 못 했다고 들었는데, 커밍아웃을 했을 때 부모님이 어떻게 반응해주기를 바라시나요?"
오소리: "저는 확답을 받고 싶을 것 같아요. 성소수자부모모임 때 하늘 님께 들은 이야기가 가장 좋았거든요. '지구가 뒤집어져도 엄마는 네 편이다'. 그렇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래도 너를 사랑해'라는 답을 가장 듣고 싶어요."
지미: "저는 커밍아웃 받고 멍했다는 말씀이 너무 와 닿아요. 커밍아웃을 받았던 순간은 정말 잘 기억도 안 납니다. 정기모임에서 들었던 얘기인데 '성소수자는 부모에게 용 같은 존재'라고, 들어는 봤지만 본 적이 없는.(웃음)"
오소리: "자녀분들은 아마 부모님께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인을 꾸준히 던졌을 거예요. 부모님들은 왜 눈치를 못 채셨나요?"
하늘: "우리 애는 안 던진 것 같아요. 안 던졌어요."
지인: "우리 애도…."
지미: "저희 아들이 저보고 그랬거든요. 중학교 3학년 때, TV에 동성애 관련 뉴스가 나왔을 때 '아빤 동성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라는 질문에 제가 '아빤 그들을 인정한다. 하지만 주변엔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했다는데 저는 전혀 기억이 안 나요. 아들이 준 사인을 해석을 못 한 거죠."
오소리: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일반인들이 나와서 고민상담을 하는 TV 프로그램을 엄마랑 보고 있었어요. 푸른 눈의 모녀가 나왔는데, 선천적으로 엄마가 눈이 푸른 색인데 딸도 그래서 엄청 놀림을 받는다는 거예요. 엄마가 그걸 보면서 '참 안타깝다. 사람들이 저러면 안 되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길래 좀 떠봤죠.
'내가 저런 사람이랑 결혼하게 되면 어떨 것 같아? 약간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랑.' 엄마가 그건 싫대요. 자기 일이 되는 건 싫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나는 우리 아들이 평범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직접적으로 성적 지향에 대한 얘긴 안 했지만 그런 말을 들으니까 그 후 커밍아웃을 하기 더 망설여지더라고요."
위니: "부모들은 그렇게 항변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사전에 지식이 있어야 눈치 챌 가능성도 생기잖아요. 그런데 부모세대는 자라면서 거의 다 30대나 40대가 될 때까지 LGBT라는 말도, 성소수자라는 말도 몰랐고, 어디서 본 적도 입에 담은 적도 없기 때문에. 저도 2010년인가 어느 강연에서 어렴풋이 알고 있던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뿐 아니라 IAQ((Intersex, Asexual, Questioner)도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어요."
지미: "처음 성소수자부모모임에 나왔을 때 벽에 LGBT라고 써 있고 옆에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써 있어서 저는 그것도 와이파이 번호인 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LGBT 얘기가 계속 나와서, 'B는 뭐지? T는 트랜스젠더 같은데…' 하고 생각했어요."
지인: "저도 '호모'가 나쁜 말인 줄도 몰랐고, 영화 보고 알았어요. 전혀 사람들한테 교육이 안 돼 있어요."
위니: "오소리 님은 성소수자 관련 자료를 부모님이 우연히 보도록 집에 슬쩍 놓아 둔다든가 해보지 않으셨어요?"
오소리: "안 해봤어요. 저는 스무 살 때부터 독립해서 살았거든요. 1년에 엄마를 보는 횟수가 서너 번밖에 안 돼요.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기회조차 별로 없었죠. 또, 저랑 엄마는 하루에 한 번씩 통화를 할 정도로 사이가 좋고, 전화 끊기 전엔 꼭 '사랑해요', '사랑해' 하면서 끊어요. 그래서 커밍아웃을 더 못 하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큰 기대감을 받아온 사람들, 부모의 기대를 많이 받고 자란 사람들이 더 커밍아웃하기 힘든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실망시키기 싫어서. 어릴 때부터 모범생이었고, 엄마 말 잘 따르고, 실망시키지 않았고… 쭉 이어지는 거죠.
'앞으로도 엄마를 실망시키면 안 돼. 나는 엄마가 바라는 사람으로, 엄마가 해 준 만큼, 사랑해준 만큼 보답을 해야 돼. 근데 커밍아웃은 엄마를 슬프게 할 거야. 엄마를 힘들게 할 거야. 엄마에게 상처를 줄 거야' 이런 생각이 지금도 엄청 강해요."
위니: "그래도 먼 미래에 언젠가는 하겠다는 상상은 안 해 보세요?"
오소리: "올해 할 거예요. 새해 목표로 삼았거든요. 이 책 나오면…. 책에 글도 썼거든요. 엄마에 대한 생각과 왜 커밍아웃 못 하는지 그런 걸 자세하게 썼어요. 엄마 읽어보시라고…. 올해 커밍아웃하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요새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 사이에 부고가 좀 잦았어요. 친한 활동가의 부친상에 갔는데, 문상 오는 활동가들마다 친지들에게 소개하면서 '성소수자 운동 함께하는 활동가다'라고 하는 거예요. 저도 그렇게 소개해 주셨고요. 그런데 약간 울컥하는 거예요.
저도 언젠가는 친지상을 당할 거고, 성소수자 활동가들, 친구들이 올 텐데, '그때 나는 이들을 뭐라고 소개해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들을 동료 활동가라고 사실대로 소개하는 게 오는 분들에게도 예의이고, 저도 거짓말하기 싫었고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르는 사람 취급해야 된다, 숨겨야 된다 그런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올해 커밍아웃을 결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