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는 무죄다'문재인 대통령은 이 책의 추천사을 썼다. 문 대통령은 "이 책이 인간의 법정과 진실의 법정 사이에 간극이 벌어졌을 때, 시민은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 조목조목 알려준다. 우리 모두에게 숙제를 던진다"고 말했다.
씨네21북스
정 전 의원이 명예훼손죄의 최대 피해자임은 확실해 보인다. 국내에서도 정 전 의원의 유죄 판결, 그리고 징역 1년이라는 중형은 화제가 됐다. 범위를 더 넓혀 세계적으로 따져봐도 마찬가지다. <정봉주는 무죄다>에서는 명예훼손죄를 처벌하는 국가 자체가 드물다고 말한다. 2010년대 국제사회에 내놓기 부끄러운 사례라고까지 말한다.
"유엔을 비롯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미주기구(OAS) 등 국제기구들은 거짓이든 참이든 말로써 다른 사람을 비방·비난했다는 이유로, 민사소송이라면 몰라도, 형사처벌을 당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용인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 비방·비난의 대상이 대선 후보와 같은 '공적인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정봉주는 무죄다> P.5~6
정봉주 전 의원의 대법원 유죄선고는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의 구성요소로서 '실체적 악의'가 있다고 인정된 것이 주요했다. 여기서 '실체적 악의'란, 허위의 사실이란 점을 분명히 알았거나, 허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대법원도 이를 원칙으로 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의 경우 원칙과 모순되는 다른 원칙들을 끼워 넣음으로써 그 엄정함을 희석시키고 결과적으로 전혀 다른 판단 기준을 적용받았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적시한 구체적 사실이 진실한지를 확인하는 일이 시간적·물리적으로 사회 통념상 가능하였다고 인정됨에도 그러한 확인의 노력을 하지 않은 채… 그 사실의 적시에 적극적으로 나아갔다"며 정 전 의원을 처벌했다. <정봉주는 무죄다>는 이러한 대법원의 판단이 '실체적 악의'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실체적 악의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발언자가 자신의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는 심각한 의심을 '실제로' 품고 있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합리적이고 신중한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문제의 발언을 했을까, 허위일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또한 발언하기 전에 더 조사를 하지 않았을까, 라는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센터모 대 톰슨 판결) <정봉주는 무죄다> P.105~106
즉, 실체적 악의는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정적 증거'가 없으면 인정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미국에선 명예훼손 소송을 해서 승소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표현의 자유는 크게 넓어진다. <정봉주는 무죄다>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의혹 제기, 심지어 명백한 거짓말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불가능에 가까운' 입증 책임을 요구함으로써 공직자들이 법적 수단으로 비판자들을 위협하지 못하는 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언론이 통상 준수하는 취재와 보도의 원칙에서 극도로 벗어난 고도로 비합리적인 행위를 했다고 해도 실제적 악의의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입장) <정봉주는 무죄다> P.112
현재 정 전 의원은 공직선거법상 낙선을 목적으로 한 허위사실유포죄로 <프레시안>과 <한겨레21> 등의 언론사 2~3곳을 고소했다.(16일 오후 2시 현재 정 전 의원 측은 이 가운데 <프레시안>을 제외한 나머지 언론사와 언론인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고 밝혔다... 편집자 주) 하지만 정 전 의원 본인이 기자회견문과 백브리핑에서 밝힌 것처럼 <프레시안>이 어떠한 목적으로 보도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프레시안>의 보도 의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단지 시기상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 시점에 맞춰서 고발한 것만을 비추어서 어떠한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추정'할 뿐이다.
하지만 이로써는 실체적 악의를 입증할 수 없다. 실체적 악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주장이 허위라는 인식을 실제로 품고 있어야 하고, 이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필요하다. 심지어 피해자는 2018.03.12. <프레시안> '피해자 "만난 적 없다? 거짓말입니다"'를 통해 자신의 주장이 진실임을 분명히 했다. <정봉주는 무죄다>가 말한 정 전 의원의 무죄 주장 근거인 실체적 악의에 비추자면, <프레시안>은 명예훼손죄로 처벌돼서는 안 된다. 또한 이는 정 전 의원 본인이 온몸으로 공권력의 실체적 악의 입증에 문제가 있음을 알리고, 정치권에서 이를 막으려고 만든 '정봉주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다.
민주주의 위해 '악마의 변'조차도 들어야 한다<정봉주는 무죄다>에선 '정봉주법'의 정신을 가장 적절하게 보여준 사례로 박원순 서울시장을 꼽는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는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으로 피해를 받았다. 이를 주장한 강용석 전 의원은 허위 사실로 박 시장을 공격한 것이 드러났음에도 박 시장은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박 시장은 "제 반대편에 있던 분들을 용서하겠다, 시민이 판단해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판단의 공을 국민에게 넘겼다. 비판자들을 향한 공직자의 법적 조치가 위축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을 비판하는 사람에게 참인 사실만 말하게 요구하고, 거짓을 말할 경우 막대한 손해배상의 위험까지 부담시킨다면, 결국 그는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이는 허위의 발언만 억제하는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참이라고 믿는 사람, 실제로 참인 사실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이다." (뉴욕타임즈 대 설리번) - <정봉주는 무죄다> P.102
그렇다면 박원순 시장의 경우처럼 실체적 악의가 입증된 허위 사실에 대해서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어야 할까? <정봉주는 무죄다>에서는 '선거를 왜곡하는 건 허위사실유포일까, 규제일까'라는 질문으로 허위사실유포 규제의 장단점 모두를 설명한다. 허위사실유포 규제는 현재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는 현실에 비추면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규제 반대의 이유로, 장점을 참작하더라도 그로 인한 위축효과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규제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한다.
"무엇이든 적절한 사용과 어느 정도의 남용을 정확히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언론이야말로 이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분야다. 민주사회에서는 공공의 사안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돼야 하며, 그러다 보면 간혹 잘못된 사실을 언급하게 되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이를 보장하지 않으면 표현의 자유가 살아남기 위한 필요한 숨구멍조차 막게 된다." (뉴욕타임즈 대 설리번) - <정봉주는 무죄다> P.100
<정봉주는 무죄다>에는 "공직자는 강인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또한 "공직 후보가 공격하는 정적이나 언론에 대해 '파울!'이라고 외쳐선 안된다"라고도 한다. 공적인 인물과 공적인 사안에 관해서는 허위 사실에 근거한 비판이나 공격이라도 최대한 허용되어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정치사법화를 자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선출된 권력인 정치가 스스로 존재를 부정하고 자신의 권능을 검찰에 헌납하며 자해를 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정봉주는 무죄다>에서는 간략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정치 영역의 이슈들은 기본적으로 자체적인 공방을 통해 해결하고 어느 정도 이상만 법의 판단을 받도록 해야 한다. 물론 그 기준이란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닌 만큼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만 마련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이 논의를 시작해야하는 것 아닐까." <정봉주는 무죄다> - P.75
최종 심판자는 국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