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교.
황은주
오랜만에 중고등학교에 들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한 울타리 안에 있다. 학교의 모습은 동네를 막론하고 사실 비슷하다. 우중충한 페인트칠에 낡은 게시판, 녹슨 골대와 벤치들… 그걸 '우리' 학교로 만드는 건 거기 다니며 쌓인 시간과 추억들 때문일 테다.
우리 학교는 등나무가 참 예뻤다. 여학교라 그런지 체육시간이 줄곧 쉬는 시간이 되곤 했다. 실기평가 기간을 제하면 쉬자고 선생님께 조르는 게 일이었다. 선생님이 마지못해 허락하면 우르르 등나무 밑 벤치로 달려가 그곳에 누웠다.
지금처럼 편안한 벤치도 아니었고 조금만 누워도 등이 배겼는데도 거기 누워 등나무의 구불구불한 줄기를 보는 게 그렇게 좋았다. 여름이면 등나무 그늘은 세상에서 제일 시원한 휴식처였다.
6년 내내 들락거렸던 곳을, 손님이 되어 쭈뼛거리며 들어섰다. 교무실을 기웃거리다 교무조직도에서 고3때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서른 몇 살, 당시 막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던 선생님이 이제 부장님이 되어 계셨다.
누구나 한번쯤 선생님이 되어보고 싶은 꿈을 꾸었을 것이다. 내가 그 길을 택하지 않은 건, 선생님은 누군가의 등을 보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떠난 제자들에게 학교는 과거의 정거장이다. 그들은 잠시 머물러 재잘거리다 떠나고, 그리고 곧 학교를 잊는다. 잊히는 건 교사의 숙명이다. 과거를 잊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정을 준 존재에게 잊히는 게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모여 만든 일상의 숭고함학교 앞이자 우리 집 옆엔 꽃집이 하나 있다. 아주머니 아저씨 부부가 매일 새벽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닫지 않고 일하시는 곳이다. 꽃집 둘째딸 언니 이름이 나와 같아서, 그 앞을 지날 때면 아주머니 아저씨가 정답게 이름을 불러주셨다.
내가 유치원에 들어가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을 졸업할 때, 인생의 길목마다 아저씨 아주머니의 마음을 얹어 축하를 받았다. 그 앞을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서 비타오백 한 박스를 사들고 꽃집에 들어서는데, 들어서자마자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저 은주예요, 라며 인사를 드리자 아주머니께서도 눈가를 계속 훔치셨는데, 자세히 보니 백내장인지 눈이 많이 흐릿하셨다. 그런 손으로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꽃 다듬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다.
좀 쉬셔야 할 것 같아요, 건넨 말에도 그래 쉬어야지, 근데 그게 말처럼 잘 안 돼. 라고.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셨다.
은주는 지금 어디까지 왔을까? 어디에 있을까?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내게, 은주는 지금 인생의 어디까지 온 걸까? 라고 다시 한번 물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