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킹 강남역점
노동당
언제 용역이 들이닥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라떼킹은 가게 앞을 컨테이너로 막았다. 음료를 파는 동시에 '초단기 임대업'이기도 한 카페 장사가 입구를 막다니.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했다. 뚫리면 끝장이라는 뜻이었다. 매일 밤 사장님은 물론이고, 같은 처지의 다른 임차상인부터 시민단체 활동가, 정당인, 예술가 등이 번갈아 보초를 섰다. 누군가 보초를 서면 나머지는 돗자리를 펴고 눈을 붙였다. 한쪽에 놓인 박스에는 언제나 컵라면과 생수가 가득 담겨 있었다. 농담 반 진담 반 전쟁이 따로 없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임대차 분쟁은 건물주에게 기울어져 있는 싸움이라서 세입자의 곁에는 아주 많은 사람이 필요했고, 지치지 않으려면 자주 곁을 보아야 했다. 싸우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늘 곱지 않아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물어왔고, 나는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선택권이 라떼킹에게 없다는 건 분명하다고 대신 답하곤 했다.
집행을 막아 낸 어느 날은 건물주가 사는 타워팰리스로 찾아가기도 했다. 목적은 분명했다. "꼬박꼬박 임대료를 바치던 세입자에게 크리스마스이브에 용역 깡패를 선물하는 건물주가 여기에 삽니다" "퇴직금에 대출금을 더해 차린 가게를 삼 년 만에 내쫓는답니다" "건물 높여서 세를 더 받겠다고요" 한겨울 동트기 직전의 칼바람을 맞으며 확성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떤 건물주는 동네에 망신살이 뻗친다고 대화하자던 데, 어떤 건물주는 집까지 찾아올 줄 몰랐다며 합의하자던 데" 상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들은 이웃 얼굴 한번 본 적 있을까. 촘촘히 박혀 있는 창문 중 어느 하나도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괴물이 있다면 저게 괴물이지. 방음도 잘 되나 보네. 마지막으로, "건물주는 임차상인과 상생하십시오"라고 외쳤다. 메아리치는 구호가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건물주와 세입자는 상생이 가능한 관계일까.
해가 뜨면 김밥을 나눠 먹으며 라떼킹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서로 물었다. 하는 일도 다르고 사는 환경도 다르지만, 타인의 싸움에 연대하는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라떼킹이 당한 일에서 불의를 목격해 분노했거나 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연대하는 이들 대부분이 임차상인이거나 세입자라는 신분의 청년 또는 예술인이었다. 당장 원룸에 살며 월세 내기도 빠듯한 사람들이 절박한 싸움에 함께하고 있었다. 임대료가 안정되길 바라는 건 세상에 우리 같은 세입자뿐이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건물주부터 공인중개사, 금융권, 행정까지 모두 임대료가 오르길 바라니까. 그들은 그래야 돈을 더 버니까.
라떼킹 투쟁이 고비를 넘고, 일일이 언급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가게가 싸우는 동안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가 친숙해졌다. 한국에서는 건물주와 공인중개사 사이에서 '상가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투기가 성행해서 유독 상가 지역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그러나 상가 지역에서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도 결국 주거지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었다. 망원동이나 연남동이 대표적이었다. 건물주는 주거 세입자보다 더 많은 임대료를 낼 수 있는 상가 세입자를 선호했고, 그만큼 주택을 개조하거나 재건축하는 일이 늘어났다.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한때는 연대하던 입장이었지만, 언제 당사자가 될지 모른다. 올해 2월에는 창천동에서 연희동으로 이사를 왔다. 물론 부자 동네 연희동이 아니라 언덕 너머 남가좌동과 맞닿은 연희동이라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애인과 종종 그런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엔 은평구로 가야 하나. 거긴 집값이 싸다던데. 여기서 밀려나면 어디로 가야 할까. 그렇게 밀려나고 밀려나다 보면 더 이상 밀려날 수 없는 곳까지 밀려나지 않을까. 그때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과 마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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