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 정상으로 가는길에서 맞은 길만스 포인트의 일출.
이철영
바벨탑을 지어 신에 도전했던 바빌로니아인들에게 형벌을 내렸듯, '신의 집'에 다가가려는 이들에게 내려진 형벌이 '고산증'이었다. 토하고 또 토해서 뱃속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오로지 중간에 먹은 사탕 한 알만이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걷다가 정지하면 잠이 들었다. 동행한 실바노가 등을 때렸다. 그러면 눈을 뜨고 다시 걸었다.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처럼 산을 오를 뿐이다. 바윗돌을 굴려 정상에 도달하면 다시 굴러떨어지고, 다시 굴려 올라가는 것.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운명을 어찌 이리도 잘 간파했단 말인가.
눈을 감으면 뜬 상태보다 훨씬 더 선명한 영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영화를 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벽 속에 갇힌 유령들처럼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식구들의 모습도, 내가 마음에 상처를 입힌 이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살아온 날들의 영상이 스쳐 지나갔다. 탐욕에 가득하고 비겁하고, 파괴적인, 후회로 가득한 지난날들이었다.
고통스럽고 부끄럽고 황홀했고 슬펐다. 아! 사람들이 죽기 전에 본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아! 헤밍웨이가 말한 표범의 사체가 이것이구나.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싶다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