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위한 그림일기02행복해지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없지만 불행해지기 위한 확실한 방법이 있다.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다.
이혜영
우리는 모두 예술가로 태어났나?그 미술치료사와 나는 알고 보니 동갑이었고 마음이 통했다.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어 사소한 일상을 나누고 삶의 고민과 새로운 계획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의 대화는 자연과 삶과 마을과 예술을 오갔다. 그러다 내가 겨우 그린 그 그림이 얼마나 좋았는지,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면 나는 쉽게 나는 동의가 되지 않았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야. 너는 미대를 나오고 화가라서 그 말이 쉬운지 몰라도 나는 예술가로 태어나지 않았어."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고, 계급화 된 예술가에 대한 반감이 뒤섞인 말이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 줄 알면서도.
어느 날 우리 고양이가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동네를 헤집고 귤밭을 헤매며 찾아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어서 덜컥 겁이 났다. 어디 올무에 걸린 건 아닐까? 다친 건 아닐까? 죽은 건 아닐까. 한밤중에 나도 모르게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리 고양이가 여러 색깔의 빛에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는 그림이 '되었다'.
그것은 되었다고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무슨 그림을 그릴지 몰랐고 다급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다보니 그런 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니 호흡이 깊어지고 마음에 믿음이 생겨 있었다. 고양이는 안전하며 곧 돌아올 거라는. 그리고 다음날 고양이가 돌아왔다. 다리를 절며 왔지만 큰 상처는 아니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글을 쓰는 것과는 달랐다. 글은 머리가 쓰는 거라면 그림은 마음이 그리는 것 같다. 그 일이 있는 후로 그림을 못 그린다는 생각이 멈춰졌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린다는 것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결과물에 대한 압박으로 우리는 그리는 과정 자체의 즐거움, 기쁨, 충만함을 잃어버렸던 거구나. 우리가 어린 아이였을 때 누구나 알았던 그 즐거움을 빼앗겨 버렸던 거구나. 우리는 예술가로 태어난 게 맞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