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천리 쓰레기 매립장 매립지 전경대구시 250만 명의 인구가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생활쓰레기는 모두 이곳, 방천리 쓰레기 매립장으로 모여들게 된다.
천정환
대구시 250만 명의 인구가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생활쓰레기는 모두 이곳, 방천리 쓰레기 매립장으로 모여들게 된다. 모든 쓰레기는 주인으로부터 잊혀진 존재이자 버려진 대상이다. 이곳은 잊혀진 물건, 수명을 다한 제품, 버려진 종잇조각 따위들이 흘러드는 공간이다. 그 존재 자체로서 역할을 다한, 더 이상 그 자체로는 쓸모가 없는 존재들로 가득찬 공간이다. 누군가는 이 공간을 혐오한다고 했다.
쓰레기장의 조성과 확장 과정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반대 시위들이 이 공간과 쓰레기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를 증언하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지기 위해 쓰레기를 품게 되었던 와룡산의 기구한 운명 또한 이를 방증하고 있다.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었던 쓰레기의 존재에서 쓰레기는 문명의 그림자라던 그의 말을 떠올린다.
과거 전통 사회에서도 쓰레기는 더럽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레기가 현재와 같이 '쓸모없는' 대상으로서 낮은 위상을 가지지 않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존재 자체로서 역할을 다한 대상들이 모여 쓰레기를 이루지만, 그 쓰레기 역시 사회에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판소리계 소설 <흥부전>의 한 장면은 쓰레기가 쓸모 있는 '거름'으로 재탄생하여 사용되었던 전통 사회의 한 특성을 보여준다. 놀부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을 때 뒤가 마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볼일을 해결하지 않고 굳이 집까지 돌아오는 장면이다. 물론 이 장면은 보잘것없는 분변까지도 집착하는 놀부의 욕심과 탐욕을 희화화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는 점은, 전통 사회에서 분변을 비롯한 쓰레기가 누군가의 욕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쓸모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농업이 국가의 산업기반이 되었던 전통 사회에서 유기물로 이루어진 쓰레기는 대부분 '거름'으로 재활용되었다. 대부분이 탄소 화합물로 이루어진 쓰레기가 자연스레 분해되고 다시 작물에 흡수되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연스러운 탄소의 순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산업화가 진행된 이후 현대 사회에서 쓰레기는 과거와 같은 역할을 상실해버렸다. 농업은 경제 담론의 변방으로 밀려나버렸으며, 이전과 같은 거름 수요는 사라지고 말았다. 더욱이 화학 비료의 등장은 농업에서 전통적 거름을 완전히 대체해 버렸다. 거름을 통한 쓰레기의 처리가 플라스틱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쓰레기에서는 적용될 수 없었다는 것도 쓰레기의 무용화에 한 가지 요인이 되었다.
쓸모가 없어진 쓰레기는 한 곳에 모여 버려졌고, 사람들은 그곳을 '쓰레기 매립장'이라 불렀다. 자연스러운 탄소의 순환이 아닌, 정체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석유화학공업제품인 플라스틱, 스티로폼이 500년 이상의 분해 기간을 거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매립장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의 정체가 일어나는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