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조리실에서 학생들이 먹은 식기를 씻고 있는 조리원들.
조정훈
식기세척기는 구간별로 다른 프로세스를 가진 곳들을 레일로 식기를 이동하는 방식이라 내가 식기를 넣는 일을 하면 조리사분 중 한 명이 식기를 빼었고 내가 식기를 빼는 일을 하면 조리사 분 중 한 명은 넣는 일을 하였다.
내가 맡은 업무 중에는 식기 세척이 제일 힘들었다. 빠른 시간 안에 수백 개의 식기들을 넣었다 빼야 했고, 특히 메뉴에 뚝배기가 나오는 경우에는 정말 힘들어서 뚝배기들을 깨고 싶은 마음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뚝배기보다 더 큰 시련을 안겨다 준 식기는 돌솥이었는데, 식단을 확인해서 돌솥비빔밥이 나오는 날이면 각오를 하고 출근했다. 돌솥을 생각 없이 식기세척기에서 빼내며 속으로 투쟁가 류의 민중가요를 부르곤 했다.
그렇게 식기 세척까지 마치고 가득 쌓인 잔반통들을 1층으로 옮겨서 잔반을 음식물 쓰레기 통에 버리면 비로소 하루 일정의 절반이 끝나게 되었고 하루 중 유일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때가 이때였다. 잔반을 버리고 오면 자신의 업무를 끝낸 분들이 하나둘씩 직접 배식을 하여 대기실에서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하는 대기실은 식사를 하는 곳이라 보기에는 좀 부족해 보였다. 학교 청소노동자들의 대기실도 냉난방도 제대로 안 되고 쥐가 나올 정도로 열악한데, 학교 비정규직이 머무르는 곳이 열악한 건 어디 가나 똑같음을 알 수 있었다.
식당에서 일하기 힘든 이유는 노동강도도 강했지만, 열기가 굉장히 강했기 때문이다. 식당의 높은 열기와 노동 강도 때문에 겨울임에도 얇은 티셔츠 한 장을 입고 일해야 했고 식사를 할 때쯤에야 티셔츠가 땀에 가득 젖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근무 중에는 워낙 바쁘고 서로 거리가 멀고 시끄러워서 노동자 간 대화가 거의 없지만, 식사를 할 때는 되게 소란스러웠다.
대화 중 가장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매니저에 대한 '험담'이었다. 당시 식당에서는 15명 정도가 일하고 있었다. 그 중 정규직은 매니저와 주방장 두 명이었고, 나머지인 조리사들과 식당보조는 몇 년을 일하든 동일임금의 비정규직이었다. 주방장의 경우 조리사분들과 함께 일하고 밥도 같이 먹다 보니 동료 관계가 짙었다. 하지만 매니저의 경우 밥도 따로 먹고 주방장 및 조리사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중간관리자의 역할이다 보니 조리사들과의 동료적 관계가 약했다.
특히 주방장의 경우 조리사분들과 나이가 비슷했지만 매니저의 경우 조리사분들보다 20~30년이나 어린데, 학생들이 메인메뉴를 더 달라고 해서 더 줬다는 이유로 조리사분들에게 혼내고 소리를 지르는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매니저가 조리사분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지 못하는 건 당연한 구조였다.
청소, 경비, 식당 같은 대학 비정규직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호소 되는 불만은 임금보다도 현장소장·매니저와 같은 정규직 중간관리자의 폭압인데 이곳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당과 청소 일, 따지고 보면 '재생산 노동'이다평소 청소경비노동자들하고 같이 활동해온지라 식당에서 일하는 고령의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건 큰 무리가 없었다. 하루 중 유일한 휴식시간인 늦은 점심식사가 끝나면 다시 같은 일정이 반복되는 것으로 하루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면 다른 일정을 수행하기 힘들 정도로 녹초가 되었는데, 업무 강도가 이보다 더 강한 조리 업무를 50~60대 고령의 노동자들이 해낸다는 게 경이로웠다. 일은 정말 힘들었지만 업무 이상의 목표가 있다 보니 버틸 수 있었다.
육체적인 힘듦 외에 정신적인 힘듦이 있었는데, 나의 경우에는 근무 중에 아는 학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청소경비노동자들의 경우 자신의 가족에게조차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국에서 청소·경비 일이 저임금인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내가 직접 식당일을 하게 되니 같은 현상이 나에게도 나타난 것이다.
물론 나의 경우 전략적인 이유 때문에 주변에 일한다는 사실을 일부러 알리지 않은 것이지만 유니폼을 입은 상태로 아는 학생들을 보게 되면 느낌이 정말 이상했다. 당시 나는 제적생 신분이라 학교 수업을 듣고 싶어도 못 듣는 상황이었고, 엄밀히 따지면 대학생이 아니었다. 그런데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끼리 식사를 하는 학생들을 보면 저곳에 앉아서 식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졸업장을 버리고서 노동현장에 들어간 선배들도 이런 고민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일과 청소 일을 사회과학적으로 분류하자면 재생산 노동이다. 재생산 노동은 사람들의 삶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활동들을 지칭한다. 육아·청소·주방노동과 같은 가사노동을 재생산노동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재생산 노동의 특징은 그 노동을 안하면 티가 많이 나는 데 비해, 그 노동을 해도 티가 잘 나지 안 난다는 것이고 그런 이유 때문에 생산노동에 비해서 재생산 노동은 저평가받아오고 있다.
여성이 주로 재생산노동을 담당해오다 보니 여성노동의 가치가 남성노동에 비해 저평가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다 보기 힘들다. 그런데 이런 경향은 임금노동 영역으로 넘어와서도 마찬가지인데 재생산 노동의 특징들이 나타나는 직종들은 대부분 최저임금이며 주로 고령의 여성들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이렇게 한 달을 일하니 조리사분들하고도 어느 정도 친해졌고 업무에도 적응하게 되었다. 이제 슬슬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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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겪은 일들②] 학교식당 잠입취업 체험기<下>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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