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새신발.고인이 살아생전 신으려고 산 새신발, 아까워서 신지도 못한 신발. 빈소에 함께 놓아두었습니다.
김성은
고(故) 박단순씨와 그 가족들처럼 1980년대에 노점상을 선택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소작농으로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상경해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여 도시 빈민이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식들과 어린 시동생들까지 돌봐야 하는 고인과 남편도 선택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계를 위해서 둘은 양말이나 과일 등을 파는 노점상이 되었습니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다가 1990년대에 강북구 삼양사거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주변에 동북시장과 솔샘시장 등이 있어서 장사도 곧잘 되었습니다. 같은 처지의 노점상들과 전국노점상연합에 가입을 했고 단속은 있었지만 동료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힘이 났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지난 2006년부터 삼양사거리 주변에 개발의 바람이 불고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강북구청은 보도환경을 개선한다면서 대대적으로 주변 노점들을 강제 철거했습니다. 결국 삼양사거리에서 장사하던 60여 개의 노점이 거리에서 사라졌고 같은 숫자의 생계도 사라졌습니다. 남편의 알코올중독이 심해져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난 이후 삼양사거리에서 같이 장사를 하던 여동생의 남편도 강제철거 이후 사망했습니다.
자리가 없어진 노점상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보따리 장사뿐이었습니다. 단속을 피해서 오랫동안 여기저기서 장사를 하는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자식들을 키웠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사는 곳 근처인 삼양사거리로 돌아왔습니다. 그곳에 있는 환경미화원 후생관에 양해를 구하고 그 계단에 앉아서 장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쁨과 슬픔, 아픔이 그대로 서려 있는 삼양사거리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엄마는 도둑질을 하지도, 강도짓을 하지도 않았습니다."고인이 돌아가신 이후 지난 26일(월), 강북구청 앞의 집회에 참가한 큰아들이 했던 말입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난 이후 강북구청의 태도와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면서 분통이 터진 것입니다.
노점상이 자주 외치는 구호 중 하나가 바로 "노점상도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당연한 말을 구호로 외치는 것은 한국 사회가 노점상을 사람 취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는 것처럼 '치워버려야 할 존재'로 생각하고, 용역업체를 통해서 깡패들을 고용하는 행태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같은 지역공동체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주민들도 "'냄새 나는 저거', '보기 싫은 저거' 빨리 좀 치워달라"고 민원전화를 하기도 합니다.
여러 자리를 차지하고 사람을 고용하여 노점을 운영하거나 '깔세'(자릿세)를 받거나 자리를 팔아먹는 등의 기업형 노점상이나 위생, 보행권 등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노점상들도 있습니다. 그런 노점들은 노점상들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인은 하루 많아야 2~3만 원 버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남편의 한 달 병원비와 1주일에 한 번씩 병문안이라도 가기 위한 교통비를 합한 50만 원을 위해서라도 노점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나오는 급여로는 정말 최소한의 생활을 하고 이 돈이라도 벌어야 남편을 돌볼 수 있었습니다. 소수의 기업형 노점상과 부도덕한 노점상들 때문에 고(故) 박단순씨처럼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노점을 선택한 사람들까지 쓰레기 취급하고 범법자 취급을 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세상의 시선은 너무 차갑기만 합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게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노점을 하는 구민이 스스로 '공무집행'이라고 강조하는 단속행정 도중에 사망했다면, 그 죽음 앞에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추어야 하는 것이 주민이 선출한 지방자치단체장의 의무이자 책임이 아닙니까. 구민의 불행한 죽음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고인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의 마음을 달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합법적인 단속이었다고만 얘기하면서 본인이 직접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는 박겸수 강북구청장의 처사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