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지난 2016년 5월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20대 여성이 살해당한 현장 부근에서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
권우성
2차적으로 일어난 여성혐오 범죄 중, 집회 참여자의 사진을 찍어 성희롱을 하는 경우가 특히 심각했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해당 케이스의 피해자를 따로 모을정도였다. 여성혐오 범죄를 멈추자고 외치는 우리의 모습은 인터넷 공간 곳곳에 업로드되어 조롱당했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이 얼굴을 가려야 했고, 그들은 마스크로 가린 얼굴들을 샅샅이 뒤져 외모를 평가했다.
그들은 우리를 보지라고 부르고, 우리의 신체 부위를 빨판이나 빨통 같은 저열한 언어로 칭하며 낄낄거렸다. 우리는 불고기, 창녀, 메갈, 세상이 낙인찍는 모든 존재의 이름을 받았다. 덕분에 집회가 끝나면 제일 먼저 하는 과제가 남초 사이트와 SNS 모니터링이 됐다. 오늘은 또 누굴 고소해야 할까. 이는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유출영상 문제 뿐만 아니라 사이버 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폭력들에 대해 고민하게 된 하나의 계기로 이어졌다.
나를 포함한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사건 자체의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이후에 일어난 사회의 반응을 보고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강남역은 이제 하나의 상징이자 목표이다.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달려가 다시는 이런 종류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나는 사이버상의 젠더폭력을 다루는 '한국사이버성범죄대응센터'의 팀원이 되었다.
여성혐오 없다면서, 집회 참가자들에겐 '김치년, 창녀, 메갈' 너는 어떻게 그렇게 바로 받아칠 수 있니? 일 년 전 그날, XX놈이라고 외친 친구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었다. 나는 그 남자가 친구의 얼굴을 보지 못했길 바라면서 하얗게 질려굳어 있었다. 그 애가 대답했다. 나도 폭력에 움츠러들었던 때가 있었어. 하지만 어차피 화장실 가다가도 여자라서 죽는 세상인데, 죽을 거면 어떻게든 죽겠지. 폭력이 일어나는 장소를 피하다 보면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어지고, 폭력적인 상황을 피하다 보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지잖아.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고, 저항하는 것 뿐이야. 그래도 우리, 같이 있으니까 좀 괜찮지 않니. 혼자일 때보다 덜 불안해. 정말 그랬다. 친구는 행진의 끝까지 내 손을 놓지않아 주었다.
5월 17일, 강남역 살인사건의 일주년 추모제가 열린다. 겁이 많은 나는 여전히 처음처럼 두렵다. 사실은 한 번도 두렵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용기는 두려울 때만 낼 수 있는 것이고, 나는 용기낼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다. 그래, 찍을 테면 찍어라. 이번 행진의 끝에서는 마스크도 벗어 던지려 한다. 만약 내 얼굴을 기억한 누군가가 나를 살해한다면, 꼭 여성혐오 범죄가 또다시 일어났다고 얘기해 달라. 시끄럽게 설치고 말하고 생각해 달라. 일 년만큼 자란 나는 그날의 내 친구가 그랬듯이, 두려워하는 과거의 내 손을 잡고 서로의 용기가 되어줄 것이다. 추모제에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