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헌재의 행정수도 위헌 결정 이후 열린 '신행정수도 건설 사수 제1차 범국민대회'의 모습.
권우성
벌써 10년이 되어 가는 헌법재판소의 어느 결정을 생각해본다. 참여정부가 수행한 가장 큰 혁신적 시도였던 행정수도 이전을 좌초시킨 그것은 이 거대한 중심이 얼마나 작위적이고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보여준다. 그 결정은 서울이라는 우리 시대의 중심은 관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편 우리의 관습과 의식, 규범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와 구조 속에서 변하고 운동한다. 결국 서울이라는 이 거대한 제국의 중심은 정치적 선택과 권력과 권력 간의 협력과 합의, 투쟁의 결과이다.
보수적 법관들은 수도 서울을 지키기 위해 관습헌법이라는 초헌법적 표현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좌초시켰다. 그들은 그저 서울 사람들이 서 있는 사회경제적 기반과 그들이 향유하는 재화와 자원들을 지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들의 시선은 서울을 위해 세운 송전탑에 땅을 빼앗긴 농민들과 그들의 전기를 위해 일상적으로 원전의 불온한 회색 방호벽을 보는 지역의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다. 사실 그들의 정의는 이 나라 전체 대중과 공공의 정의라기보단 지극히 서울이라는 이 중심부 기득권을 위한 정의였다.
하지만 그들은 관습헌법에 따라 수도가 서울이라는 논리를 내놓으며, 서울이 사실 어떤 경제적 효용이나 필연성과 같은 내적인 이유로 중심의 위치를 획득한 곳이 아님을 스스로 폭로했다. 이렇듯 서울은 오로지 그곳이 이 나라의 수도이자 중심이라는 일련의 관습적 사고를 통해 지지되고 정당화 되고 있었다.
이는 다른 의미로 이 나라의 수도가, 권력과 자본의 중심이 서울이 아닐 수 있음을 증명한다. 단지 그 어떤 의식과 편견만이 서울을 정당화하고 있다. 결국 변두리만 아니라 중심도 구성되고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한편 중심의 존재 양식 역시 새롭게 구성하고 변화시킬 수 있으며, 중심과 변두리의 관계의 내용과 양식 역시 의식과 실제의 변화를 위한 투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뜻한다.
충남 일대에서 오늘도 끊임없이 연기를 뿜어내는 화력발전소 전기의 최종 종착지가 어디일까? 노량진과 신림의 열악한 주거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청년 다수는 어디서 온 이들일까?
일자리는 없고, '지방거점 국립대학'의 위상은 떨어지고... 서울은 우리 시대의 원더랜드다. 그곳은 또 우리 시대의 블랙홀이다. 동시에 서울은 메트로폴리탄이며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의 지상천국이며 이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은 그 변두리들의 사람과 자원, 땅과 에너지, 노동을 수탈하여 유지되는 곳이다. 서울은 이처럼 변두리들을 식민화하여 착취하지 않고는 지탱되지 않지만 정작 서울은 변두리들을 멸시하고 타자화 시킨다.
'촌'이라는 지칭은 어느새 더욱 분명하게 후진적이고 낡고 오래되고 구린 '서울 바깥'에 대한 멸시의 언어가 되었고, 사투리는 어느새 가난하고 천박하고 교양없고 동시에 웃긴 말이 되어 희극과 오락 프로그램에서 조롱거리로 쓰이고 있다. 심지어 많은 이들에게 대구나 광주는 도쿄나 베이징보다 심리적 거리가 먼 곳이 되었다. 그나마 부산은 해운대와 광안리 때문이라도 촌 취급은 면하는 듯 보인다.
이 지역 산업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수도권이나 동남아시아로 옮겨가는 만큼 이 변두리에서 수도권 중심부로의 엑소더스(Exodus)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기존의 일자리를 따라 서울과 그 인접 지역으로 옮겨 가야 했고, 청년층은 그나마 있었던 양질의 일자리들이 사라짐에 따라 그래도 좀 더 기회가 있어 보이는 서울로 옮겨 갔다. 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건 공무원이 되거나 아니면 저임금 하청기업 노동자나 서비스직 노동자가 되는 것 뿐이다. 개중에 일부는 울산의 조선이나 자동차, 부산의 선박 부품과 해운 등으로 나가기도 했지만 최근 조선과 해운의 급격한 쇠락은 이제 이 탈출의 흐름을 더욱 분명하게 서울로 향하게 했다.
한편 다수의 서비스업과 소매업 역시 중앙의 지배하에 잠식되어 갔다. 백화점-대형마트-SSM-편의점으로 이어지는 소매시장 지배 체계는 지역의 구매력들을 빠르게 중앙으로 가져갔다. 이런 중앙 중심의 소매시장은 지역에 유의미한 경제적 기여를 전혀 만들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지역 내부에서의 자본 증식은 이뤄지지 못했고, 지방에 남은 다소간의 하청 기업이나 서비스업을 통해 얻어진 구매력은 도소매 지배 체제를 통해 다수가 중앙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지역에 만들어진 부가가치라고는 고작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상징하는 마트 캐셔와 판촉사원, 편의점 알바와 같은 직업들 뿐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변두리 지역들은 아주 상징적이고 급격한 유출에 노출된 곳부터 느리게 죽어가고 있다. 전지구적인 생산네트워크의 유연화와 재배치, 자본 축적 형태의 금융화와 전산화, 대기업의 소매업 지배는 이제 더욱 분명하게 지역의 위상과 가치를 해체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은 이런 급격한 쇠락과 이탈을 설명하는 데 있어 아주 좋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