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기념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는 이 원장.
손준수
그는 논설위원과 경제부장으로 외환위기를 겪은 뒤 언론이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자각에서 마흔일곱 나이로 유학길에 올랐다. 저널리즘과 문화 연구로 유명한 런던대 골드스미스에서 6년간 공부하며 '미디어와 경제위기'를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다. 그의 미디어비평에 유럽언론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유럽 일류언론이 우리 언론과 크게 다른 점은 언론인 충원·교육과정이 판이하고 미디어 자체비평과 상호비평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수만 명 '언론고시낭인'이 대기하고 있는 우리 언론사 공채는 한국 말고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저널리즘의 보편적 표준이 아니라 각 사의 규범, 선배들의 가치관과 문장 스타일까지 주입되는 도제식 언론인 교육은 시대착오적이고 한국 민주주의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할 정도로 미디어 상호비평을 거의 하지 않는 풍토 또한 언론이 바로 선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 언론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괴물'이 된 이유다.
<가디언>이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이 된 요인으로는 베를리너판으로 디자인과 콘텐츠를 혁신한 점이 꼽히지만, 그중에서도 미디어면을 통해 보수언론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전술이 주효했다. 기사량도 많지만 최강으로 구성된 미디어팀은 보수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의 <더타임스> <더선> <뉴스오브더월드>와 싸우며 보수언론의 허구성을 가차 없이 파헤쳤다. <가디언>은 <뉴스오브더월드>의 전화 해킹 사실을 끈질기게 추적 보도해 2011년 폐간시키기도 했다.
그는 또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편집·편성지침이 겉치레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구성원의 일탈을 막는 수단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2만 명의 직원이 있는 BBC가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흔들림 없는 논조를 유지하는 것은 편성지침(Editorial Guidelines) 준수 덕분이라고 말했다. 지침의 부제는 '가치들과 표준들'(Values & Standards)이다. BBC가 추구하는 가치를 열거해놓고 세세히 규정된 저널리즘의 표준을 지키기 때문에 일탈자가 없다는 것이다.
'세계독립언론 콘퍼런스'를 주최하라그는 진보언론이 취할 구체적 대안의 하나로 세계적 연대를 제안했다.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가 엄청난 비밀들을 제보할 언론사로 <가디언> <르몽드> <엘파이스> <슈피겔> <뉴욕타임스> 5개를 선정했는데, 모두 진보 또는 독립언론이다. <한겨레>도 끼어들 만한 자격이 충분했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세계독립언론 콘퍼런스' 같은 대회를 여는 방안도 제시했다. 한국에는 <한겨레> 말고도 <오마이뉴스> <뉴스타파> 등 세계에 내놓을 만한 독립언론의 대표주자들이 많다. 콘퍼런스 개최 뒤에도 기사 제휴 등으로 지속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면 한국 관련 기사는 이들 매체의 기사를 받게 되고 한국을 대표하는 위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독립적 위상을 유지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면 스스로 영역을 넓히려는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번은 추운 겨울날 과천 대공원 호수에서 물새들이 아직 얼지 않은 한쪽에 몰려있는데 새들이 계속 헤엄치며 날갯짓을 하는 걸 봤어요. 잘은 모르지만 저들도 좁아지는 자기네들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저런 노력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진보언론도 어려운 때일수록 더 간절히 발버둥 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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