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서울시의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 집행을 중단하는 직권취소 조처를 했다. 서울시는 이에 불복, 대법원에 제소하기로 해 청년수당 갈등이 법정 소송으로 비화하게 됐다. 서울시는 복지부의 반대에도 3천명의 지급 대상자를 선정하고 이중 청년수당 약정서에 동의한 2천831명에게 활동지원금을 지급했다. 사진은 4일 오후 서울시청 청년정책담당관 사무실
연합뉴스
서울시 청년수당을 둘러싼 갈등이 한편의 블랙코미디가 돼가는 모양새다. 고용노동부가 전면에 등장해 서울시 청년수당과 유사한 현금 지급 방안을 발표하면서, 보건복지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제껏 정부와 여당 그리고 보건복지부는 서울시의 '현금 지급' 자체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근거로 반대해왔기 때문에 고용노동부가 현금 지급 방안을 내놓은 이상 기존 입장을 고수할 명분이 사라졌다. 이에 서울시는 "고용노동부는 되고 서울시는 안 되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보건복지부는 고용노동부의 재원이 '조세'가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는 궁색한 입장만 내놓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자신들의 현금 지급 방안은 서울시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이번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서울시가 옳았다는 '양심 고백'으로 비치는가 하면, 정부 내 '엑스맨'을 자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유야 어떻든 정부와 여당, 보건복지부를 난처하게 만든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고용노동부의 발표를 계기로 드디어 '도덕적 해이'나 '포퓰리즘' 같은 비생산적 프레임을 넘어서, 청년정책 전반을 둘러싼 논쟁다운 논쟁을 펼칠 제2라운드를 시작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고용노동부 역시 정부와 마찬가지로 서울시 '청년수당'에 꾸준히 반대해왔는데, 이유는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 '현금 지급' 그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청년수당이 청년 일자리 정책의 일환이기 때문에 고용노동부 정책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 또 그럼에도 취업훈련 및 구직활동이라는 조건이 명확하지 않아 현금 지급의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두 가지 이유로 반대해왔다. 다시 말해 선심성 정책에 그칠 것이라는 게 핵심 이유였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청년 일자리 정책에 이미 현금 지원을 결합해 오고 있었다. 이번 발표도 그동안 취업성공패키지 초기 단계에 지급하던 현금 지원을 후반기에도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이지, 그동안 하지 않던 현금 지원을 새롭게 도입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또 지금까지의 지원이 조세로 이루어져 왔다는 점에서 고용노동부의 지원은 조세가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시 청년수당을 놓고 '현금 지원'에 초점을 맞춰 '도덕적 해이' 운운하는 논쟁은 종식돼야 한다.
실제로 실업정책에서 '현금 지원'은 구직자를 위한 '소득 안정책'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OECD 국가들 대부분이 기여에 기반을 둔 고용보험뿐만 아니라, 고용보험에서 배제된 구직자의 소득안정을 지원하는 실업부조 제도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가 고용보험을 통해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것 역시 대표적 사례다. 실업정책에서 소득 안정책은 핵심 정책 중 하나이며, 고용노동부 역시 고용보험뿐 아니라 청년일자리 정책에도 소득보장책을 결부시켜왔던 것이다.
따라서 논쟁의 핵심은 현금지원을 통한 소득보장 여부가 아니라, 소득보장에 '어떤 조건'이 결합돼야 하는가에 있다. 실업자를 위한 소득보장은 장기실업을 방지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구직'을 위한 소득보장책이어야 한다. 즉, 핵심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이직을 위한 기간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다. 특히 현 정부와 기업이 강하게 주장하는 노동유연성을 위해서라도, 이직을 위한 안정적 기간을 확보해주는 것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의 논쟁점이 생긴다. 고용노동부는, 서울시 청년수당은 실업자에게 현금을 지급하면서도 '구직'을 조건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정책인 반면, 자신의 정책은 '구직'을 위한 '취업훈련'과 '취업'까지를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좋은'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여기서 논쟁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과연 고용노동부의 '구직' 조건이 현 시대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서울시 정책은 정말로 '구직'을 위한 정책 지원이나 조건이 부재한지, 나아가 청년세대의 문제를 넘어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대응하는 '미래의 정책'은 어떠한 방향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논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야 청년들에게 단순히 돈 몇 푼을 주느냐 안 주냐는 식의 민망한 싸움을 넘어서, 한국의 미래를 위한 '노동시장 정책'을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용노동부 청년 정책, 진짜 '좋은' 정책인가?고용노동부의 주장처럼 과연 취업성공패키지를 비롯한 정부의 청년 정책이 실효성이 있는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더 나은 일자리로의 취업으로 이어지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대표적 지표가 적정수준의 임금과 근속연수다.
정부는 그동안 청년정책에 8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입했고, 2016년 예산만도 2조 원이 넘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 실업률은 더욱 높아지고 있으며,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한 취업자의 경우 절반 이상이 근속연수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임금 150만 원 이상의 일자리도 절반이 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는 서울시 청년수당으로 인해 청년들이 정부의 취업성공패키지에서 이탈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이는 정부 정책이 별로 좋은 정책이 아니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청년들이 당장 손쉽게 돈을 벌기 위해 서울시 청년수당을 택한다는 고용노동부의 주장은 청년들의 현실을 외면하면서 오히려 손쉽게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 주장처럼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하는 구직자에게 "1년에 1천만 원"의 혜택이 돌아간다면, 누가 거부하겠는가? 청년들이 '1년에 1천만 원' 대신 '6개월간 월 50만 원'을 택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주장하듯 우리나라 실업정책이 과연 '좋은' 정책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정부가 자주 인용하는 독일을 포함한 주요 OECD 국가들과 비교해 보도록 하자. 실제로 각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 재정 지출을 비교해보면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공허한지 알 수 있다.
아래 표는 OECD 주요 국가들의 GDP 대비 노동시장 정책 지출 비중을 보여준다. 덴마크는 약 3.5%, 네덜란드는 약 2.8% 수준으로 가장 높고, 독일은 1.7%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0.57%로 독일의 절반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