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발언 경청하는 오바마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5년 10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급속한 미국 패권 질서의 변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1세기 국제정치는 미·중 관계에 달려있다고 했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패권 지위는 지속적으로 약화되었고 도전자로서 중국의 입지는 날로 강화되었다.
미국 패권을 대체할 기세였다. 서둘러야 했다. 경제위기에서 빠져나오는 아주 짧은 몇 년 동안 미국은 중국을 세계를 함께 경영할 파트너로 다루는 듯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정도 그랬다.
급속히 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이 유일 초강국 미국의 패권 지위를 위협하는 한편 미국이 경제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미국은 도전자 중국에 대해 봉쇄와 억제를 해야 하게 되었다.
'재균형(rebalancing)' 방침에 따라 아시아를 중심으로 놓고 국가안보 정책의 틀을 다시 짰다(pivot to Asia). 정치, 경제, 안보의 수단과 자원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두기로 했다. 그물은 넓게 그리고 탄탄하게 짜야 한다.
협력외교를 강조하던 오바마의 미국은 '힘의 외교'를 내세운 네오콘 부시 정부보다도 동맹의 결속을 매우 중시한다. 유일 초강국 마지막 시절 부시 정권은 동맹국이 함께 해주면 좋고, 안되면 독자적으로라도 전쟁과 압박노선을 불사했다.
그러나 중국이 부쩍 커져 버린 새로운 현실에서 동맹은 미국의 힘을 보강하는 임무를 떠맡아야 한다. 중국 봉쇄전략의 일익을 담당하지 않으면 동맹으로서의 가치는 없어진다. 한국은 또다시 냉전기 최전선 국가로서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구조가 도래한 것이다.
두 개의 중국 포위 전선 : 남중국해와 한반도 미국과 중국은 두 개의 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의 남방 전선과 동북아에서 한반도를 중심에 한 북방 전선이다. 대립의 출발은 남방 전선이다. 중국해에 항공모함 등 미국의 해군력을 깊숙이 그리고 무겁게 침투시키고 있다.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센카쿠·다이요타오 지역과 그 주변 해역에서 무력시위와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거의 매일 워싱턴, 도쿄, 베이징의 아침 방송 메인 뉴스가 되고 있다.
중국은 남방 전선에서 포위를 다양한 방식으로 뚫고 있다. 베트남과의 관계 회복, 태국을 통한 인도양 직접 진출, ASEAN과 외교 강화,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이란과의 전폭적인 협력관계 회복으로 나타나고 있다.
남방 전선에서 양측의 '근육 자랑'은 거의 매일 계속되고 있지만 당장 중국의 심장을 직접 노리진 않는다. 오히려 중국이 실전능력을 갖춘 군사력을 키우는 현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북방 전선에서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앞세우고 들어오는 것은 심각한 위협이 된다.
남방 전선에서 중국과 미·일의 군사력 시위가 일종의 '어깨 싸움'이라면, 북방 전선은 주먹과 주먹, 뼈와 뼈가 부딪히는 곳이다. 강력한 동맹국을 갖지 못한 중국으로서 '두 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대치하는 것은 벅차다.
미국이 중국포위망을 남방 전선에서 북방 전선으로 넓히는 데 있어서 당연히 최전선 국가 한국이 합류해야만 했다. 지난해 한국 정부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기반시설 투자은행(AIIB)에 가입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 기념 열병식 행사에 시진핑 주석 옆에 서는 것에 대해 미국은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동맹의 결속 강화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지난해 겨울부터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일본과 위안부 문제로 더 이상 갈등하지 말도록 유도하였고, 한국 정부가 서둘러 위안부 문제를 '종결지은' 배경이다.
미국의 군사적 대치 전선의 확장은 2016년 들어서 중국의 금융 및 자본시장 흔들기로 이어지고 있다. 조지 소로스와 같은 헤지펀드 세력이 중국의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을 교란시키는 것을 수수방관하고 있다. 군사안보상의 포위가 노골화되고 금융 자본시장에서의 공격에 노출된 중국 지도부는 갈수록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지난 1월 상순과 하순 두 차례 중국을 다녀왔다. 중국 CCTV는 거의 종일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일본의 군함과 전투기들이 기동하는 실제 화면과 컴퓨터 그래픽 영상을 동원하여 중국이 군사적 압박을 받는 듯한 이미지를 발신한다. 특히 1월 상순 방문 때는 북한 핵실험 직후라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B-52 전폭기 영상을 보여주기 바빴다.
한미연합훈련 자료 영상도 계속 보여준다. 북 핵실험의 위험성보다는 한·미 군사력 전개가 당장 위협인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뼈와 뼈가 부딪히는 북방 전선, 즉 서해와 한반도의 육상과 공중 그리고 동해에서 미군의 전략무기 전개는 도저히 참기 어렵다. 바로 그사이에 한국의 박근혜 정권은 전방기지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자원하고 나섰다.
탈냉전기 '압록강 전선' 구축 전략 뼈와 뼈가 부딪히는 북방 전선에서 한국은 연약한 살덩어리와 같다. 냉전 종식 이후 한국의 역대 정부는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화약고 한반도를 대륙과 해양세력이 협력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전환하는 대외전략을 구사하였다. 노태우 정부는 중국과 러시아와 수교를 이뤄냈고, 북한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남북 교류와 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채택하였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 안보문제 해결의 직접 당사자로서 북한의 핵 개발을 동결시키고 항차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의 외교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 10.4 합의를 통해 북한이 핵 활동을 동결하고, 관련 시설의 가동 중지와 재사용이 불능토록 했다. 핵시설이 밀집한 영변을 미국의 비확산 전문가들이 감시할 수 있게 했으며,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북한이 스스로 파괴하는 초석을 깔아주었다.
북한이 처음 핵실험을 한 2006년 10월 이래 최근까지 노무현 정부는 물론 그토록 중국과 불편했던 이명박 정권조차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는 중국의 역할을 중시했다. 북한과 중국 사이에 갈등구조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이명박 정권도 북한 체제의 붕괴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붕괴에 따른 재앙을 홀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를 통한 국제 제재를 가하면서 한국과 미국은 북한을 6자회담에 나오도록 문을 열어두었다. 바로 '압록강 전선 전략'이다.
국제 제재를 통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면서도 그 압박으로 인해 곧바로 남북이 군사적 대치로 들어가거나 중국이 북한의 뒤를 봐주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이러한 압록강 전선 전략이 비록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을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악화되고, 한국과의 거리를 좁히는 외교적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압록강 전선에서 휴전선으로 내려앉은 북방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