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고양파주당원협의회는 지난 11월7일 '벼랑 끝 청년들, 헬조선에서 길을 묻는다'라는 제목으로 시민 좌담회를 열었다.
김동욱
- 한국사회는 지금 청년들의 문제들을 올바로 바라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좌담회는 지금 청년들 앞에 놓인 현실을 바로 보고, '헬조선'에서 함께 살아가는 길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했다. 좌담회에 앞서 오늘 오신 패널들은 자기소개부터 해주시라.홍세화(이하 홍): 저는 가장자리 협동조합 이사장이고, 장발장 은행장이며, 그리고 또… 몇 개 더 있는데 잊어 버렸네. 아참 노동당 당원이자 고문이기도 하다. 이건 중요한 건데.(웃음)
김성일(이하 김): 한때 노동당 당원이었다. 최근 복당 신청을 했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청년좌파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고, 지난 9월쯤 시작한 팟캐스트 '절망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절망 라디오는 지금 2~3달 째 진행 중인데, 고정 청취자가 1500명 정도다.
길은정(이하 길): 알바노조 비정분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비정분회는 아닐 '비(非)' 정해질 '정(定)'을 써서 '모든 정해진 것들을 거부하는 조직'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알바노조는 기존의 노동조합과는 달리 산업이나 부문별 분회를 조직하지 않는다. 5명 이상이 모이면 어떤 분회든 조직할 수 있다. 알바는 19살 때부터 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알바를 하고 있거나, 구하고 있거나, 그만 둔 지 얼마 안 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교회 근로장학생으로 연명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아닌데….(웃음)
- 청년 현실부터 이야기를 풀어보자. 길은정 씨는 지난 4년간 알바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길: 처음 알바를 시작한 건 용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가정불화로 가출 한 뒤부터는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어떤 경우에도 계속 알바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대학에 다니는 중인데 다행히 빚은 아직 없다.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 사고 있는 이유다. 그래도 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는 통신비, 식비, 주거비, 공과금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 어떤 알바들을 했나? 경험담을 좀 들려 달라. 길: 가장 최근에 했던 건 프랜차이즈 주꾸미 집에서 서빙하는 일이었다. 굉장히 맛이 없는 집이어서 (손님이 많지 않아) 일은 편했다. 그 전에는 밥버거집에서 일했고, 크로키 모델, 공연스태프 단기알바 등도 해 봤다. 경력이 쌓이다 보면 알바를 구할 때도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다. 구인광고에서 '용모단정, 20~25세' 같은 내용이 있으면, 그건 예쁘고 젊은 여자를 뽑겠다는 뜻이다. '성실' '책임감' 같은 문구는 많이 부려 먹겠다는 뜻이다.
- 부당한 대우나 부조리한 경우를 당한 적이 있었나?길: 부당해고나 '꺾기'는 다반사고, 성폭력에 노출되는 경우도 잦다. 예를 들어 우리끼리 '꾸밈노동'이라고 부르는 게 있다. 알바에게 화장을 하게 하거나 예쁜 옷을 입기를 강요하는 경우를 말한다. 식당이나 카페 같은 경우가 특히 심하다. 어떤 업소는 '네 얼굴은 서비스 할 자세가 안 돼 있다' '화장부터 하고 와라'는 등의 요구를 노골적으로 한다.
성차별이나 성폭력도 비일비재하다. 크로키 모델을 할 때였다. 이런 일은 주로 모델협회에서 알바를 뽑아 파견을 보낸다. 한 번은 현장관리자가 자꾸 내 몸을 만진 적이 있었다. 너무 참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일을 한 후 서둘러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랬더니 그 현장관리자가 "왜 그렇게 급하게 가, 쉬다 가"라는 말을 하더라.
부당해고도 많다. 최근까지 일했던 그 주꾸미 집에서는 1주일 사이에 5명이 해고됐다. 이유는 '일 못함' '사장한테 말대꾸' 등이었다. 수당을 지급하지 않거나 휴게시간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을 하기로 계약을 해놓고, 중간에 손님이 없으면 "너 손님 올 때까지 피시방 같은데 가 있어"라고 한다. 그리고는 그 시간은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꺾기'도 자주 있다
- 김성일 대표께서 진행하고 있는 절망라디오에도 이런 사례들이 많이 있지 않나? 청년들의 절망사례 중에서 들려주실 만 한 게 있나?김: 청년들 각자의 절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청년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게 있다. 그건 바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절망이다. 당장의 배고픔보다는 자신의 미래 그 자체가 바로 절망이다.
최근 가장 많이 접하는 사례는 대출이다. 특히 청년 대출금이 계속 늘어나는 문제는 심각하다. 만약 대학을 다니고 있다면 그만 둘 수도, 계속 다닐 수도 없는 문제다. 밥을 굶으면서 학교를 다니다가 장학금을 못 받아서 결국 대학을 그만두어야 했던 사례도 있다.
지금 대학에 입학하는 청년들은 학자금 대출로 시작해서 생계비 대출로 이어지고, 그게 알바로 연결되는 게 일반적이다. 금세 빚이 쌓인다. 그렇게 되면 월세나 가스비 전기세가 밀리고 다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결국 이런 청년들은 제3금융으로 넘어간다. 요즘에는 제3금융권의 대출 브로커가 캠퍼스 안에까지 들어와서 영업을 한다.
대학에 가지 않는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부모나 가족이 그들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만큼 기성세대들의 살림살이도 팍팍해 진 거다. 이런 청년들을 유혹하는 대출은 다양하다. 휴대폰 내구제 대출(급전이 필요한 대출희망자들이 고가의 휴대폰을 개통한 뒤 기계 값의 일부만 받고 되파는 것)부터 고소론, 중고나라론 등이 최근에 유행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 청년은 휴대폰 내구제 대출로 900만 원을 끌어다 썼다. 그 청년은 이자를 갚기 위해 다시 다른 대출을 받아야 했다. 빚을 갚기 위해 그는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빚을 내 빚을 갚는 악순환은 여전하다. 지금 서울시 노숙인들 중 26%가 20~30대부터 노숙을 시작한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학에 가지 않는 청년들이 3금융권 대출에 너무 쉽게 노출이 된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