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인과 피고발인 간의 고용 관계가 종료된 이후에도 보복조치 행위가 인정되어야 한다. 특히, 계약직, 임시직, 파견직, 하청 등 불안정한 고용 관계에서는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고용주가 바뀌어 버리면 책임을 지지 않게 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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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고용차별에 대한 고소, 차별로 추정되는 행위에 대한 내부 조사 절차에 협조하는 행위', '차별 조사 절차나 소송에서 증언하는 행위'를 피해 당사자의 문제 제기 행위와 함께 '보복조치 금지 행위'로 보장함으로써 피해자의 문제 제기 과정 자체가 조직적으로 가로막히거나 이를 돕고자 하는 동료들에게 보복조치가 가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일련의 문제제기와 조사 과정에 대한 협력을 단념시키게 할 수 있는 어떠한 종류의 차별 행위들도 금지한다. 보복조치에 해당하는 '불리한 조치'를 승진 거부, 고용 거부, 복지 혜택 미제공, 강등, 정직, 해고 등의 고용이나 노동조건 상의 조치로만 한정하지 않고 협박, 괴롭힘 등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내부 고충 처리 절차를 지연하거나 접근을 제한하는 행위도 불리한 조치로 본다.
이는 기업에서 실질적인 보복 조치가 단지 고용 상의 징계로만 나타나지 않고, 따돌림, 괴롭힘, 협박, 악의적인 소문 유포, 동료와 친구들에 대한 압박 등을 통해 피해자와 조력 행위 자체를 단념시키는 양태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매우 중요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러한 규정에 근거하여 인종차별 진정을 한 진정인을 관리자가 직원 2명을 시켜 감시하게 한 사건, 성차별 진정인을 매주 있는 정기적인 점심 모임에서 배제한 사건 등을 불이익 처분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또 한 가지 눈여겨 볼 지점은 고발인과 피고발인 간의 고용 관계가 종료된 이후에도 보복조치의 행위가 인정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고발인과의 고용 관계가 종료되었다고 하더라도 피고발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고발인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의 고용 추천서를 작성하거나 추천서 작성 자체를 거부하는 행위, 다른 고용인에게 고발인의 행위 등을 악의적으로 알리는 행위 등은 개인의 장래 고용 가능성을 방해하는 행위로서 보복조치에 해당된다.
이러한 규정들은 많은 여성 노동자와 성희롱 피해자들이 소규모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거나, 계약직, 파견직, 하청 등 불안정한 고용 관계에 있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해 보면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고용주가 바뀌어 버리면 고용주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게 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근본 해결방안, 관점의 변화로부터 시작돼야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미국의 고용평등위원회 매뉴얼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누구라도 불이익 조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침묵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2009년 미국의 크로퍼드라는 여성이 자신이 일하던 지방정부에서 성희롱 사실을 알린 이후 공금횡령을 이유로 해고를 당하자, 이를 보복조치에 해당하는 해고로 보고 소송을 제기했던 사건에서 대법원은 보복조치를 인정하면서 이러한 판결문을 남겼다.
"조심성 있는 피고용인들은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가해지는 민권법 제7조 침해 행위들에 대해 침묵을 지키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기보다는 침묵을 지키는 가장 큰 이유가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실정에 비추어 봤을 때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상황이다."성희롱과 그에 따른 불이익 조치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는 일은 이와 같이 관점의 변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직장 내 성희롱의 발생이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닌 차별적 노동 구조, 조직 내 권력 구조의 문제이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성희롱 피해 사실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가 가로막히고 있다는 것, 나아가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문제 제기 자체를 차단시키기 위한 일련의 불이익 조치들이 당사자 개인과 한 기업, 조직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 전반적으로 법적 구제 수단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가로막고 부당함에 침묵하는 관행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불이익 조치의 피해자는 '가해자의 책임은 인정하지만 사측의 책임은 없다'고 판결한 1심에 불복하여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기업을 상대로 하는 항소심을 이어가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에도 피해자는 더 이상 기업의 보복조치가 침묵을 강요하는 관행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큰 용기를 낸 것이다. 우리 사회가 성희롱과 불이익 조치를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만 두고 침묵하지 않도록, 함께 응원하고 힘을 모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