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카고' 내한공연 한 장면
신시컴퍼니
내한공연에 오른 뮤지컬 '시카고'는 '육감의 잔치'라 할 만했다. '미국적이고도 미국적인' 이 작품에 '미국적인 관능'을 갖춘 배우들은 단숨에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대체로 마른 느낌이었던 한국 배우들에 비해, 건장한 근육질의 남·녀 앙상블들은 특유의 리듬감으로 무대를 점령했다. 'All That Jazz' 등의 뮤지컬넘버에서 드러나는 부드러움과 절제가 뒤얽힌 농염한 동작부터 시종일관 무대를 제 것처럼 갖고 노는 무르익은 여유도 인상적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을 멎게 하는 미국적 관능 자체가 '오리지널'의 위엄을 자랑했다.
주연 배우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록시 하트' 역의 딜리아 크로만은 백치미가 흐르면서도 사랑스러운 연기로 관객들을 제 편으로 만든다. 공연 중간 주변에서 속속 '귀엽다'는 감탄사가 튀어나오는 건 당연지사다. '빌리 플린' 역이 마르코 주니노는 건들거리면서도 능청스러운 연기력으로 제 역할을 다했다.
반면 '벨마 켈리' 역을 맡은 '테라 C. 매클라우드'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캐스팅이다. 특별히 꼬집을 것 없는 연기력과 가창력이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연기를 펼치지도 못했다. 간혹 숨이 차 보이는 몇몇 대목에서는 한국의 '벨마 캘리 장인' 최정원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이번 내한공연은 유쾌한 자막이 관극의 재미가 큰 역할을 했다. 근래에는 라이선스, 내한공연 할 것 없이 각 프로덕션들이 번역에 큰 공을 들이고 있다. 잘못된 오역이나 지나친 직역으로 인해 관객들이 불편을 토로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서다. 이는 그만큼 작품을 받아들이는 한국 관객의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뮤지컬 '시카고' 내한공연의 자막은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각기 대사에 다른 서체를 적용하는 것은 물론, 크기나 배경 등을 달리해 재미를 배가했다. 예를 들어, '록시 하트'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에 고무돼 뭇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장면에서는 '록시'라는 자막 주변으로 깨알 같은 별들이 박혀 있다. 스타를 꿈꾸는 그녀의 푸푼 마음을 자막에까지 녹여낸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자막은 단순한 내용의 이해를 넘어 감정까지 실어내며 재미를 이끌어내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배우들의 '깜짝 한국어' 서비스도 유쾌했다. '빌리 플린' 역의 마르코 주니노는 "자기야~!"라는 깜짝 대사로 관객을 웃게 했고, '록시 하트' 역의 딜리아 크로만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깜찍한 대사로 객석을 들썩이게 했다. 내한공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벤트이기에 더 큰 재미를 준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