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도착머리가 엉망입니다만 기분은 얼굴 표정에 그대로 나타나 있네요.
정상혁
잠시 휴식 후 다시 서울행 버스를 타고 가게 될 중마터미널로 향했다. 1시 30분 동서울행 고속버스에 자전거와 짐을 싣었다. 지그시 두 눈을 감으니 지난 4일의 시간들이 빨리감기한 듯이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갔다.
계획 대로 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계획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비를 좀 맞는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 생기는 게 아니었음을 알았다. 자전거로 빗속을 달리는 것이 꽤 신난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여행이 주는 큰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루 세 끼를 챙기는 것의 고단함을 알게 되었고, 누리는 힘들어도 좀처럼 내색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4일 동안 많은 것들을 비워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들로 다시 채운 채로 버스는 다섯시간쯤 달려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여행 뒷이야기] 너무 강렬해서 도저히 잊혀질 것 같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차갑기만한 현실 앞에 그것은 그저 '희망사항'이었을 뿐.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그 시간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의 작은 조각들로 나뉘어 기억속으로 빠르게 사라져 갔다. 여행내내 서로 의지하며 '부자간의 정이란 바로 이런 것'임을 보여주던 우리 사이도 어느새 데면데면해졌다.
동생 한울이가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립다며 한울이가 좋아하는 빼빼로까지 사들고 대문으로 뛰어가던 누리는 다시 만난 지 겨우 두 시간만에 '아, 한울이 너무 짜증나!' 하며 이내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 버렸다.
캠핑용품들 제자리에 하나 둘씩 정리되어 갈 무렵, 나의 신분도 어느새 자전거 여행자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돌아와 있었다. 여행을 위해 잠시 내려놓았던 내 삶의 무게들을 다시 어깨에 올려놓고 보니 금세 어깨가 살짝 쳐져 보였다. 그 짐의 무게가 다시 점점 무겁게 느껴질 때가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날이 될 것이다.
집을 떠나 길에서 보낸 4일간의 섬진강 자전거 여행은 어떻게 기억될까? 내리쬐는 태양, 쏟아지는 비, 이를 악물고 패달을 밟아야만 했던 맞바람 그리고 호환, 마마보다 무서웠던 오르막들. 부족한 것 투성이인 텐트생활 중에서도 편안한 잠자리가 됐던 정자와 멋진 풍경들, 자전거 여행자들의 힘찬 격려와 박수소리, 햇빛을 피해 그늘에서 마시던 시원한 물 맛, 시리도록 차가웠던 섬진강물에 발 담그던 그 순간, 빗속의 라이딩과 간이정류장 벤치에서 쪼그려 앉아 먹던 라면까지.
그 순간에는 좋고 나쁜 일이었을 뿐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돌아보면 그저 '추억'이라는 두 글자로만 기억될 것이다.
"누리야, 아빠랑 또 자전거 여행갈거야?"
"음... 이제 1년쯤 뒤에?"누리는 1년 뒤라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여행이 고프다. 이제 또 다른 새로운 여행을 위해 누리가 덥석 물 것 같은 떡밥을 다시 찾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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