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허삼관> 한 장면
(주)두타연
허삼관이 매혈을 하기 위해 의사에게 통조림을 갖다 바친 것과 꼭 마찬가지로, 진찰을 받기 위해 의사에게 허리를 굽신굽신 숙여야 했던 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1989년 전국민을 대상으로 건강보험이 실시된 이후에야 국가의 통제를 받게 되면서 병원비도 어느 정도 단일화 되고, 서민들은 그나마 병원에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병원 문턱은 여전히 너무 높다. 건강보험료가 체납되어 보험 자격이 정지된 사람이 200만 명이 훨씬 넘고(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국감자료),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포기한 사람이 연간 최대 360만 명에 이른다(2013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중병에 걸리면 기둥 뿌리가 뽑힌다는 말이 괜한 엄살이 아니다. 한국의 10가구 중 한 가구는 재난적 의료비로 고통받고 있다(보건복지부, 2011년 복지욕구 실태조사).
영화에서 과도하게 피를 팔다가 쇼크로 쓰러진 허삼관이 본인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수혈을 받는 상황에 놓이는데... 정신을 차리고 난 뒤 허삼관이 "피값에 병원비까지 내라"는 의사 말에 "왜 허락도 없이 남의 피를 넣어서 돈을 달라고 하냐"며 "(피를) 도로 뽑아가라"고 항의하는 장면이 있다.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아픈 사람은 누구나 병원 이용할 수 있게 해야매혈 직후처럼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꿈꾸지만, 병원비 걱정하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 정도도 버거운 게 현실이다. 노동으로 착취당하고 열악한 복지로 또 한 번 뜯긴다. 몸이 부서져라 일한 노동자들은 몸이 아프면 그간 모은 돈을 고스란히 병원비로 지불해야 한다.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의료비조차 스스로 내도록 만드는 무서운 사회다.
한국은 의료민영화를 통해 병원이 사람들의 고혈을 뽑아내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 경제위기로 서민들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해 남은 건강보험 흑자 12조 원. 정부는 국민들의 이 '혈세'를 병원자본과 제약자본, 공급자들에게 퍼주려고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피를 뽑아내는 장면에서 메스꺼움을 느낀 나는 정부의 이런 일련의 것들을 보며 한층 더 어지러움을 느낀다.
한국의 의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최소한 아픈 아이를 병원에 보내며 타는 부모 마음에 병원비 걱정까지 보태지 않아도 되는 사회다.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이 하고 있는 의료체계다. 그리고 이 길을 위해 서민들의 피를 더 뽑아낼 것이 아니라 충분히 배불리 살아온 사람들로부터 재원을 수혈해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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