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중인 책장비좁은 방에 책으로 가득 둘러싸인 곳에서 미술작업도 함께 한다. 복잡해보이지만 본인은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다고 말한다.
윤성근
- 이렇게 책이 많으면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으신가요?"불편하지요. 책이 계속 쌓이기 때문에 정리도 자주 해야 되고.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부터 헌책방 돌아다니면서 책을 사 모았는데요, 지금은 가족들도 이해를 해주니 오히려 고맙지요. 사실은 한국에서 오시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이 방도 어느 정도는 치워놓은 상태입니다. 그 전에는 저 혼자 앉을 자리 밖에 없었는데 몇 달 동안 정리해서 이정도 까지 만들어놨습니다."
- 책이 너무 많아서 무너질까 걱정이 됩니다."실제로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일본은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많으니까요. 대비한다고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몇 해 전 후쿠시마 인근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저는 여기에 살았습니다. 방의 상태는 지금보다 더 형편없었지요. 물론 제 나름으로 정리를 한다고 해두었습니다만……. 늘 지진 경보가 있으면 긴장합니다. 후쿠시마는 도쿄에서 그렇게 가까운 곳이 아니니까 도쿄는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진의 여파가 엄청났습니다. 집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금 보시는 이 방의 책들이 다 무너져 버렸어요. 그 때문에 망가진 책들도 있고, 다시 서가를 정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 책이 많은데도 지저분하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특별한 정리 방법이 있으신가요?"크게 보면 '무게', '크기', '종류' 이 세 가지 구분으로 정리합니다. 먼저 무겁거나 큰 판형의 책은 아래쪽으로 가고요 가벼운 것일수록 위로 올라갑니다. 그래야 안정감이 있지요. 당연한 얘기지만 문학이면 문학, 그림이면 그림, 이런 식으로 비슷한 종류를 한곳에 모아놔야 나중에 참고용으로 찾을 때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정리를 한 다음에는 책 크기별로 또 나눠서 정리하면 깔끔해집니다.
지난번 지진 때문에 그 후로는 대비를 좀 해놓은 상태입니다. 각 책장은 한 손으로 해서는 책이 잘 안 빠질 정도로 빡빡하게 꽂아둡니다. 그래야 흔들렸을 때 책장 밖으로 책이 쏟아지는 일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도 완벽한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로 얼마 전 도쿄에 제법 심한 지진이 한차례 있었는데 그 충격으로 이렇게 빡빡하게 정리한 책이 절반 정도는 책장 밖으로 튀어나왔거든요. 이런 자연재해가 거의 없는 한국이 부럽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헌책방을 순례하다
- 헌책방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가지게 되었나요?"제가 어렸을 때는 물론 동네에 있는 헌책방에 다녔습니다. 중학생 때는 멀리 있는 곳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그렇게 멀리, 그리고 오랫동안 돌아다닐 수 없는 형편이라 답답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 학교 도서관에서 <전국 고서점 지도첩>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곧바로 대출했습니다. 저에겐 보물지도나 마찬가지였죠. 당연히 그런 책 하나쯤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걸 이때 발견한 겁니다.
그 책을 참조해서 여러 헌책방을 많이 돌아다녔어요.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그 책을 너무 자주 대출해서 표지며 본문이 너덜너덜 해질 지경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도서관을 담당하던 선생님이 졸업 선물이라면서 그 책을 저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학교에서 너만큼 이 책을 많이 본 사람은 없을 거라면서, 그러니 이 책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하셨어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저에겐 여전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 고등학생인데 공부는 안하고 헌책방만 다니셨어요?"그렇습니다. 공부엔 별로 취미가 안 생기더라고요.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만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데츠카 오사무(手塚 治虫, 1928~1989, '우주소년 아톰'의 작가)같은 만화가가 되려고 열심히 그림만 그렸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물론 부모님도 포기했어요. 몇 번 혼나기도 했지만 결국 제가 만화 그리는 걸 인정해주셨습니다. 일본은 한국과 사정이 조금 다른 게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률이 그렇게 높지 않아요. 물론 일본도 명문대에 들어가려는 수험생들은 경쟁이 치열한데 꼭 대학에 나와야한다는 생각은 안 해요. 대학 안 나와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고 원한다면 지방에 있는 대학에 다녀도 사는 데 불편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