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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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5월 20일 만들어진 노동법 18조는 부당해고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골자인데, 이 때문에 '평생 노동법'으로 불린다. 이탈리아는 유럽 국가들 중 노동조합의 연대 및 권익을 가장 잘 보장하는 나라로 평가 받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 노동법 역시 시대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와 여러 정당들이 개정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노동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다가 지난 2012년 마리오 몬티 전 총리 정부 하에서 해고에 대한 규제 완화와 실업수당 확대 등의 방향으로 노동법 개정에 다가갔고, 결국 '경영상의 이유'가 있으면 뚜렷한 이유 없이도 직원을 해고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 새로 채용을 하는 기업은 정부의 지원급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 개정안은 2017년부터 전 이탈리아에서 실시될 예정인데, 렌치 정부는 2012년 개정안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 총체적인 개혁 개정안을 추진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렌치 정부측은 고용주가 좀 더 쉽게 직원을 채용할 수 있게 하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노동자들은 이런 발상이 해고도 수월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법 개정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대는 '달걀시위'로 이어졌다. 지난 9월, 민주당 전당대회가 진행된 곳이 달걀로 노랗게 물들었다.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렌치 총리가 연설을 하던 현장 주위에 달걀을 투척했기 때문이다. 렌치 총리를 향한 노동자들의 달걀 투척은 한 달 여가 훨씬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렌치 총리는 지난 3일 롬바르디아 지방 브레시아시 상공인 모임에 참석해 연설을 할 때도경찰과 대치중이던 노동자들로부터 달걀 세례를 맞아야 했고 7일 밀라노 근처 몬차 지역에 새로 들어선 프랑스 전기통신회사 알카텔 루슨트 공장을 방문했을 때도 달걀 세례를 받아야 했다. 계속되는 달걀세례에 난감해하는 렌치 총리 경호원들의 모습은 전 세계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기금마련 호화 파티로 논란 부른 렌치 총리사실 렌치 총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노동법 개정 천명 때문만은 아니다. 이탈리아인들은 '개혁'을 주장하는 그가 내세운 개혁안들이 대부분 베를루스코니 정권이 주장하거나 시도하려고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에 실망하고 있다. 렌치 총리는 유럽연합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 경제회복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이탈리아인들은 유로존 경제 3위의 이탈리아 업체들이 해외자본에 팔려가는 것에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 노동법 18조까지 개정한다니,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과거 진보의 아이콘이기도 했기에 그 배신감은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언론을 장식한, 달걀세례를 맞는 렌치 총리의 모습만큼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건, 그가 연 디너 이벤트였다. 지난 7일 렌치 총리는 밀라노 새 고층빌딩 '더 몰'에서 '이탈리아의 즐거움-총리와 함께 이벤트'를 열었다. 최근 '영원한 진보의 터'로 알려진 북부지방에서조차 민주당 지지율이 41%대로 떨어지자, 민주당 기금 마련을 위해 저녁식사 자리를 만든 것이다.
이 이벤트의 1인당 최하 기부금은 1000유로(한화 150만 원)였지만, 무려 800여명이 이벤트 티켓을 구입했다. 장례업체 업주들부터 재벌까지, 참석자 대부분이 기업인이나 상공인 변호사 등이었다. 이날 행사에 한 시간 늦게 도착한 렌치 총리는 노동개정안 추진자인 보스키, 농림부장관 마르티나, 유럽의회자문기관(일명, 베네치아위원회) 진출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베네토지방 도지사 출마를 밝힌 모레티 등 평소 렌치 총리 충성파로 알려진 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는 빨강, 초록, 흰색 광선이 현란하게 쏟아지는 무대는 마치 디스코텍을 방불케 했는데 연단에서 총리가 던진 농담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 파티로 1800만 유로를 모을 수 있었기에, 적어도 우리 민주당 직원들 중에는 그 누구도 급여문제로 정부보조기금에 의존해야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재정적인 부분, 돈이고 그 외에 뛰어난 발상들과 서슴없는 비판, 그리고 당신들의 지칠 줄 모르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이탈리아 경제의 회복을 위해 일할 것이며 이탈리아의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