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에서 만민공동회 제안자인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사례발표를 하고 있다.
권우성
요즘 카톡을 보면 프리챌 사태가 데자뷰된다. 한국 인터넷 기업 역사상 최대 뻘짓으로 기록될 만한 프리챌의 교훈을 카톡은 깊이 새겨봐야 할 것이다. 역사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뻘짓은 무한 반복되기 때문이다.
SNS만 대충 살펴봐도 카톡에 대한 이용자들의 분위기가 날로 악화되고 있음을 금방 느낄 수 있다. 그나마 카톡 측이 외양간을 고치겠다며 몇 가지 개선 방안을 발표했지만 그걸로 잃어버린 소를 쉽사리 되찾을 것 같진 않다. 사실 '외양간 프로젝트'라는 작명부터가 난센스이다. 외양간에서 잃어버린 소들은 누가 훔쳐간(해킹) 것이 아니라 제 발로 떠난(사이버 망명) 것이기 때문이다.
제 발로 떠난 이용자들이 애초에 카톡에 대해 가졌던 아쉬움은 이용자들과의 신뢰와 정부 압력에 대한 태도였다. 보안이 텔레그램에 비해 허술하냐 아니냐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단지 보안을 텔레그램 수준으로 강화한다고 해서 신뢰를 잃은 이용자들이 떠나간 외양간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도 이걸 모르고 있다면 그나마 남아 있던 이용자들마저 미련 없이 외양간을 떠나는 건 시간 문제이다. 실제로 외양간 프로젝트의 발표 이후 오히려 이용자들의 분위기는 더 냉랭해진 느낌이다. 비판의 화살이 정부를 겨냥해야 옳지 않냐는 카톡 측 항변은 물론 맞는 소리지만, 몇몇 내부 관계자들의 꼬인 스텝이 계속 분위기를 더 나쁜 쪽으로 몰고 있다. 결정적 위기는 항상 내부에서 비롯된다.
그 사이 카톡 하루 평균 이용자수가 지난 주 대비 40만 명 정도 감소했다는 집계가 나왔다. 반면 텔레그램 가입자는 순식간에 150만을 돌파했다. 3500만 이용자 중 그깟 40만 정도가 빠진게 무슨 대수겠냐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것도 한국 인터넷 역사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트위터가 국내에서 본격 사용된 직후인 2009년, 당시 이용자 수가 불과 50~60만 명 정도였을 때부터 이미 언론에서는 트위터 현상을 주목하는 기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었다. 심지어 그 이듬해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트위터가 선거 판세를 결정한다'는 류의 기사들이 속출했고, 실제로 이것은 현실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뭔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기에 40만 명은 충분히 의미있는 숫자이며, 150만은 아주 위협적인 숫자이다. 이런 추세가 1~2주만 계속된다면 순식간에 판도는 뒤집힐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대책없이 낙관적인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 중 혹시라도 이용자들이 카카오스토리에 쌓아놓은 수많은 디카 사진들이 아까워서 쉽게 카톡을 탈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프리챌의 1000만 이용자들이 유료화의 볼모가 된 자신의 소중한 게시물들을 기꺼이 버렸던 역사를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기 바란다.
혹시라도 이용자들이 카톡에서 구매한 유료 이모티콘과 카카오뮤직에서 구매한 유료 음악들이 아까워서라도 쉽게 카톡을 탈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도토리를 구매해 온갖 아이템들로 정성스레 가꿔놨던 미니홈피를 수 년째 방치하고 있는 3000만의 싸이월드 이용자들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환상에 빠져 모바일 메신저 시장 점유율 1위의 아성이 간단히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낙관적인 분들도 있다. 하지만 카톡의 미래는 카톡에서 텔레그램으로 이용자 수의 무게 중심추가 넘어갈 것이냐의 여부로 판단할 일이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그보다는 카톡이 압도적 시장 점유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할 것이냐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카톡 한 방에 가진 않겠지만... 더 센 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