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없는사회
포도밭출판사
책<국가 없는 사회>는 "평생 일을 멈추지 않은 노동자이자 무장봉기를 이끈 지도자, 총파업을 꿈꾸며 인민을 조직한 활동가"였던 이탈리아의 아나키스트 에리코 말라테스타가 쓰고, 한국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연구활동가 하승우씨가 번역했다.
1900년대 초반 '이탈리아의 레닌'(말라테스타는 자신은 결코 지배자, 폭군이 아니라며 그러한 표현을 거부했다)이라 불렸던 말라테스타와 2014년 이 땅에서 자치와 자율, 분권을 주장하는 하승우, 그리고 출판하기 좋은 대도시가 아닌 지방을, 시장성이 아닌 호혜를 선택한 출판사 포도밭의 만남은 저자와 번역자, 출판사, 그리고 저자 사후라는 한계와 시공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더구나 이 책이 한 세기 전에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곳의 현실에 비춰 읽어도 손색없을 만큼 날카롭다. 책을 읽는 내내 생생한 토론의 현장에 함께 앉아있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묻고 답하고, 반론하는 대화적 구성과 쉽고 간결한 언어의 사용은 자칫 지루하거나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화를 명쾌하면서도 집중력 있게 전달한다.
소유제와 국가로부터의 완전한 결별조르조라는 가상의 인물이 이탈리아의 한 모퉁이 카페에서 노동자, 치안 판사, 공화주의자 등 다양한 인물과 만나 국가와 사회에 관해 나눴던 대화와 논쟁을 담은 이 책은 모두 17일간의 만남을 담은 17장으로 구성돼있다. 물론 혁명 운동과 투옥 등으로 사실 23년간에 걸쳐 완성됐지만 말이다. 말라테스타는 가상의 인물 조르조의 입을 빌어 우리 사회의 악은 어떻게 출현했는지, 과연 정부가 인민을 대변할 수 있는지, 경찰은 왜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지, 소유 제도의 혁명은 왜 불가능한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을 통해 인간의 온전한 자유와 자치는 국가(정부) 없는 사회에서만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국가 없는 사회란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는 사회혁명"이다. 이를 위해 동시에 진행돼야 할 변화는 소유 제도와 생산·교환체계의 완전한 변화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혁명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따라서 노동에 따른 그는 "착취를 없애고 모든 사람이 일하며 자신들이 합의한 관행에 따라 자기 노동의 성과를 즐길 수 있는" 사회를 주장한다.
소유제의 폐지와 더불어 그는 "사회를 위에서 지배하고 자신의 의지를 강제로 요구할 수단을 가진 기관", 즉 국가의 폐지를 주장한다. 지금의 대의제와 선거 제도로는 수천 개의 다양하고 다른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이러한 절차와 도구들이 오히려 지배를 강제하는 권력의 원천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란 필연적으로 "대중을 복종하는 인간으로 만들 필요가 있고", "입법부와 행정부 전체는, 법과 군대, 경찰, 판사 등을 갖춘 정부 전체는 민중을 통제하고 착취를 보장하는 쪽으로만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권력을 없애고 인민들이 스스로 세운 자유로운 규범들을 사회의 중심 운영 원리로 세울 것을 주장한다. "사회란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이기에 권력이 아닌 평등과 연대에 기댄 인민들의 자유로운 협약만이 노예적 복종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민을, 자율과 자치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뭔가를 더 할 수 조차 없는 나쁜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의 분명한 숙제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서도 계획을 적용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일깨운다.
그는 혁명을 기도한다. "인민이 자유의 시간을 경험하고 자신들의 힘을 판단"(124쪽)하게 되면 결코 이 이후의 시간은 과거와 동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의식적이고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지배자들에게 저항하지 않는 한 어떤 사회 상태든 충분한 근거들을 가지기 때문에 영원히 지속될 수 있기"(111쪽) 때문이다.
지금의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말라테스타의 주장은 매우 익숙하고 원칙적이지만 그가 살아냈고 책을 썼던 시기가 한 세기 전이라는 점에서, 또한 비판을 넘어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정을 담금질 한다는 점에서 그의 말과 사유엔 힘이 있다.
아나키스트의 세계관을 쉽고 능숙하게 담아낸 입문서라고 그 의미를 한정하기엔 인간이 가진 힘과 희망에 대한 믿음이 이 책 안에 있다. 부질없는 몽상이라 치부하기엔 상처받고 모욕당한 삶을 부둥켜안고 제발 내가, 내일이 벼랑 끝이 아니기를 기원하며 하루하루 버텨야하는 현실이 있다. 하여 국가 없는 사회란 절대 실현 불가능한 꿈이라 뒷걸음치는 순간 그는 말할 게다.
"그럴 경우 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고, 자신을 둘러싼 냉혹한 폭력에 항상 노출될 겁니다. 그래요, 그게 현실이죠. 민중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무얼 하면 되는지 모르거나 설령 알더라도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하길 원치 않아요.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노예이지요." (102쪽)국가 '이후'의 삶을 설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