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타흐티엔종합학교 학생들 모습.
임정훈
그렇다면 피사의 시행 기관인 OECD는 이 결과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피사 결과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OECD의 홈페이지 곳곳에서 피사 관련 소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피사의 총 책임자인 안드레아 슐라이허(Andreas Schleicher)는 '피사 결과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동아시아의 강세, 특히 상하이 중국의 탁월한 성취를 언급했다. 그는 사람들이 흔히 중국 학생들은 단순 암기 실력과 시험 대비 훈련 때문에 성적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결과에서 중국 학생들이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성취는 지식 응용 및 추론 능력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이번 피사에서 상위권에 속한 나라(이를테면 동아시아)의 학생들이 보여준 탁월한 결과는 물려받은 지적 재능보다는 '열공(hard work)'이 바로 그 열쇠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이번 피사 결과는 각국이 우수한 결과를 보여준 나라들의 교육 시스템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피사 연구진 역시 보고서(volume 3)에서 동아시아의 우수한 성취를 언급하면서,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학생들의 지각률과 결석률이 낮으며 사회가 교육과 학업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 나라들은 유교 전통을 바탕으로 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고 기술한다(p.184). 또한, 일반적으로 부모들이 자녀들의 미래에 대해 기대치를 높게 가질 때 그것이 자녀에게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데, 이를테면 자녀가 대졸자가 되기를 기대하는 부모를 둔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끈기와 자아 효능감이 그렇지 않은 부모를 둔 학생들의 그것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분석을 내리고 있다(volume 3 p.186).
하지만, 동아시아 부모들의 과도한 교육열과 경쟁심리가 사회적으로 어떤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이번 피사 결과는 앞으로 북유럽의 스칸디맘· 대디와 동아시아의 타이거 맘 중 누구의 교육철학을 지지하는 쪽으로 활용이 될까. 교육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이 되는 대목이다.
초국가 기관인 OECD가 각국의 교육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피사 결과는 여러 나라들이 자국의 교육 정책을 개편하거나 유지하는데 근거를 제공하는 강력한 장치로 자리매김한다. 2000년대 초반, 일본이 학생, 체험 중심을 강조한 여유('유도리') 교육의 기조를 폐기할 때에도, 핀란드가 종합학교모델을 근간으로 하는 형평성 중심의 의무교육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도 피사 결과가 결정적인 근거(혹은 핑계)로 작용했다. 이 지점에서 바로 '교육'은 '정치적인 교육'이 된다.
피사와 모든 표준화 시험의 태생적 한계유튜브와 페이스북 접속을 국가가 차단하는 중국에서 과연 상하이시의 표본 학교 선정은 공정하게 이루어졌는지, 상당수의 동아시아 학생들이 경험하는 사교육과 부모들의 교육 경쟁열, 특히 선행 학습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맥락이 열심히 공부(hard work)한다는 긍정적인 어휘로 묘사될 수 있는 것인지, 교육이라는 것이 경제적 효과 및 가치로 치환될 때에만 그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이론적 지식과 문제해결 및 응용으로서의 지식 이외에 실천적(윤리적) 지식 또한 젊은 세대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에 대해 피사 보고서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더구나, 각기 다른 인간, 그것도 전세계 청소년들의 지적 성장과 발달을 표준화된 시험문제로 측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관련 기사 : 인간의 모든 능력을 측정할 수 있을까?)에 대해, 그리고 표준화된 측정이 비교와 서열을 불러오는 지금의 사태가 각국의 교육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 OECD가 내놓은 입장을 아직 찾아볼 수 없다. 물론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글자 그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를 뜻하는 OECD가 주관하는 표준화 평가인 피사가 가진 태생적 한계는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OECD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는 다른 기사 역시 아시아 국가들이 피사 성적의 상위권을 차지하였음을 강조함과 동시에 글로벌 경제 시대에 경쟁력은 지식의 응용에서 비롯된다며 문제해결기술, 즉 기술로서의 지식에 무게를 싣는 모양새다. 피사 보고서 역시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ematics)즉, 과학이나 수학영역의 지식이 갖는 중요성을 취업과 관련하여 설명한다(Volume 3, p.187).
미래를 예측하긴 힘들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라면 OECD는 앞으로 동아시아 국가의 교육 모델에 상당한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또, 이미 피사로 인해 읽기,수학,과학 성취 수준을 놓고 국가 간 경쟁 구도가 조성된 상황에서, 그리고 이미 세계적으로 과학기술 분야가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비해 압도적인 지원과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쏠림 현상을 더욱 부추김과 동시에 교육과 지식의 존재 목적을 경제적 가치 쪽으로 몰아가는 게 아닌지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더불어, 스마트 러닝, 문제해결 기술, ICT, 읽기, 수학, 과학이 절묘하게 결합된 (지식 경제의 부흥과 직결되는) 온라인 학습 및 교수법이 각광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안 그래도 스마트폰 없이는 잠시도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학생들이 현실 속에서 친구들, 선생님과 교류, 협력, 공감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기회가 줄어들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학교교육과 지식의 존재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피사 2012가 엄청난 자료와 결과 분석을 내놓은 채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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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최상·'흥미' 최하...한국 학생은 행복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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