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 전시실 로비아쉽지만, 유물 보존을 위해 전시관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 전시관 옆에서는 사진 아래처럼 약재나 약재로 사용되는 곤충을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체험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이지성
박물관 3층에 위치한 여러 전시실 중에서 우선 동선상 첫번째에 해당하는 허준기념실로 걸음을 옮겼다. 한의학이나 허준선생에 관한 설명을 잠시 보고 나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 권의 책, 동의보감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뭐랄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책을 동네에서 보고 있으니 기분이 사뭇 남다르다. 출간된 지 400년이나 된 책에 지역감정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집 근처에서 이 책이 만들어졌다고 하니 다른 유물에 비해 친숙함이 좀 더 풀풀 묻어난다.
그 옆에는 목판 하나가 자리를 같이하고 있다. 바로 동의보감의 목판이다. 닳고 닳도록 인쇄한 흔적이 묻어나는 새카만 목판. 때론 천 마디 설명보다도 그 목판을 한번 보는 것이 동의보감이 가지는 의미 "조선 의학의 정수를 담은 귀중한 책"을 깨닫는데 도움이 된다.
주로 의서가 많이 전시되어 있는 이 전시실에서는 중간 중간 허준 외에 다른 의학자의 저술과 청나라 등 당시 중국에서 들여온 의서도 제법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의원들을 교육하는데 사용되는 의서나 어린아이를 치료하는 방법만을 다루는 책 등 이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다양한 분야의 의서가 당시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편으론 재미있고 한편으로는 놀랍다.
그리고 그중 백미는 67매 가량의 말 그림과 말의 질병을 기록한 책인 마경초집언해. 17세기에 수의학 전문 서적이라니, 어찌 보면 당연히 존재할 수 있는 서적이건만 그럼에도 조선시대에 동물을 치료하는 모습은 좀처럼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앞서 동의보감을 보기는 했지만, 그것을 보다 자세히 전시해 놓은 곳은 전시실 깊숙한 곳에 마련된 동의보감 섹션이다. 여기에서는 동의보감의 구성이나 내용 등을 컴퓨터를 활용해서 보다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원형으로 구성된 이 공간을 둘러보던 중 한쪽 벽면에 허준이 동의보감을 집필한 당시의 허가바위를 재현한 모형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허준박물관에는 지금 이 허가바위 모형 외에도 허준의 생애 중 중요한 장면이나, 동의보감의 제작 과정 등을 재현한 모형이 상당히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물론 모형은 유물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유물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당시 삶의 모습을 보다 쉽게 구체화할 수 있다. 유물의 종류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지역 박물관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이런 모형의 활용은 제법 유용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