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을 무대로 삼았던 2010년의 공연, <도시이동연구 혹은 연극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
이나리
몇 주 전 그 광화문에 나갔다가 시민들이 판매자로 참여한 큰 장터가 열린 것을 보았다. 며칠 뒤 가을 옷을 꺼내기 위해 옷장정리를 하다가 앞으로도 다시 입을 것 같지 않은 옷들이 적지 않게 옷걸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그 장터가 떠올랐다. 이제는 손이가지 않지만 정이 남아 섣불리 정리하지 못했던 옷가지들이 그 장터에 나가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었다. 대부분 당시의 필요에 의해 사놓고 몇 번 안 입은 옷들이 적지 않았다.
사실, 우리 집 식구들은 새 옷보다 헌옷에 더 익숙하다. 아빠, 엄마는 우리가 초등학교 때에도 학교의 바자회에 작아진 우리 옷들을 내놓고 1~5천 원짜리의 다른 옷을 사서 입으시곤 했다. 내가 드라마를 할 때 협찬 받았던 옷들은 나중에 이웃집이나 친척집 동생들의 차지가 되었다. 그 후에도 우리집의 재활용품은 모두 '아름다운 가게'차지가 되었고, 부모님도 '아름다운 가게'에서 옷을 사 입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셨다. 특히 아빠는 장기간의 외국 여행 중에도 필요한 물건들을 현지의 Goodwill Store나 대학의 학생들 바자회에서 조달하곤 한다.
나는 직접 장돌뱅이가 되어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 생각을 식구들에게 얘기하자 모두가 응원했다. '광화문 희망나눔장터'라는 정보를 검색해보니 아름다운가게와 협력하여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재활용, 나눔 장터로 3월부터 10월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개최되는 장터였다.
신청은 희망나눔장터 홈페이지에서 판매참가신청란에 간단한 신청사유를 쓰고 신청하면 된다. 초등학교 재학중인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장터', 중학생 이상 성인을 위한 '일반시민장터', 학교, 기관, 동호회, 기업 등의 단체를 위한 '단체장터'가 있다.
신청자는 추첨을 통해서 참가가 확정된다. 추첨이 되면 문자가 오고, 문자를 받은 사람은 물품을 챙겨서 장터로 나가면 된다. 판매물품 수량은 80점 이하로 한정되는데 내 옷을 정리하고 보니 많다고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50점 정도에 불과했다.
10월 6일, 28인치 여행 가방에 채워 넣은 옷들과 돗자리, 작은 낚시의자까지 챙겨서 광화문으로 나갔다. 개장시간인 11시쯤에도 이미 광장은 장꾼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인파에 놀란 나는 서둘러 자리표를 받고 지정된 자리로 가서 판매물품을 펼쳐놓았다. 내 왼쪽에는 여고생 두 명이 수첩을 비롯한 작은 문구부터 블라우스까지 여러 종류의 물건을 펼쳐놓았고 오른쪽에는 아주머니께서 주로 옷을 보기 좋게 진열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