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4일 <민족21> 발행인인 명진 스님이 서울 장충동 만해NGO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정보원 수사를 비판했다.
김민석
하긴 아내조차 내게 "진짜 아닌 거 맞지?"라고 물었을 정도니 다른 이들은 말해서 무엇하랴. 당시 시민사회운동의 한 간부는 "이참에 털건 털고 가는 게 어떠냐"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안영민 편집주간의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고, <민족21>은 대대적인 혁신선언으로 살아남아야 하지 않냐는 충고였다.
국정원과 보수언론의 양공작전은 <민족21>에 엄청난 후과를 남겼다. 당장 <민족21>의 독자들부터 구독을 중단했다. 취재원들도 우리와의 만남을 꺼렸다. 인터뷰를 하려고 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피했다. 얼마 안 되는 광고수입도 종쳤다. 그 덕분에 <민족21>은 창간 이래 최악의 경영위기에 직면해야 했다. 결국 경영난 속에 기자들과 직원들을 하나둘씩 정리했다. 나 역시 취재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민족21>은 현재까지도 그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건 초기의 대대적인 마녀사냥 내용과 달리 국정원의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그 어디에서도 정찰총국 혹은 225국의 지령은 나오지 않았다. 내 휴대폰과 집 전화, 사무실 전화와 전자우편, 우편물 등 2007년부터 감청해온 모든 통신내용과 컴퓨터, USB 등 저장파일 어디에서도 지령과 보고의 흔적은 없었다.
국정원에 10차례 이상 출두했지만 그들의 시빗거리는 내가 쓴 책과 강연자료를 비롯한 몇몇 문서, 일본의 총련 간부와 사업협의를 위해 주고받은 전자우편에 불과했다. 결국 국정원과 검찰은 애초의 혐의가 대폭 축소된 내용으로 나를 기소했을 뿐이다.
더 웃긴 것은 <민족21> 편집국장이다. 나와 함께 간첩 혐의를 받았던 편집국장은 3~4차례 국정원 출두 후 아예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이처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민족21>을 세상과 단절시킨 정찰총국의 지령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리고 내게 남은 것은 상처투성이 몸과 마음뿐이다.
다시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 되는가 그래서다. 나는 이석기 의원 사건 또한 이러한 경로를 밟을 게 뻔하다고 본다. 녹취록이다 뭐다 하지만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 태산을 울려 흔들게 한 것은 쥐 한 마리뿐이란 뜻)의 결과가 눈에 선하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내란음모혐의는 증거부족으로 은근 슬쩍 빠지고 결국 남는 것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 鼻懸鈴 :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속담의 한역)의 국가보안법 위반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태산명동'이라는 것을. 몇 달 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이참에 국정원 댓글 사건도, 대선 부정의혹도 다 덮고, 나아가 국정원 개혁의 목소리도 짓눌러버리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그런데 '태산명동'에 현혹된 세상은 훗날의 '서일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용머리만 보던 시선이 뱀꼬리까지는 닿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오직 용머리만 남겨둔다. 그러면서 똑같은 일이 터지면 다시 말한다. '설마'라고.
이는 진보적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민족21>과 나를 두고 '설마'라고 했던 사람들은 오늘,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을 두고 다시 '설마'라고 의심한다. 어느 순간 국정원이 흘리고 보수언론이 받아 적는 외눈박이 '팩트'에 더 관심을 가진다. 정작 국정원이 대대적인 '마녀사냥'으로 자신들의 생존권 지키기에 나섰다는 진짜 팩트에는 눈을 돌린다. 이 정권이 대선 부정의혹 규탄 촛불시위를 불끄기 위해 총공세에 나섰다는 진짜 실체는 뒤로 제쳐둔다.
<민족21> 사건 때, 나는 기자들로부터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은 사실이 없냐는 질문공세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왜 그걸 나한테 물어보는가. 혐의를 덧씌운 자들이 근거를 밝혀야 할 문제 아닌가."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수사기관에서는 이웃의 한 사람을 용의자라 붙들고는 "네가 살인을 안 했다는 것을 증명해봐"라고 다그친다. 이게 옳은 처사인가. 살인했다는 증거부터 먼저 명백히 밝히는 게 우선 아닌가.
이런 몰상식이 유독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만 적용된다. 내란음모라. 최소한 총기라도 몇 개 꺼내놓고, 그럴듯하게 만든 계획서라도 펼쳐놔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진보진영 내에서도 꽤 있다. 그 사람들의 생각을 탓할 마음은 없다. 또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을 편들 생각도 없다. 다만 충고하고 싶은 것은 감정이 앞서면 이성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이성이 흔들리는 순간 주객이 전도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성이다. 우리의 이성은 오직 추악한 댓글로 여론을 호도하고, 그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대대적인 역공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역사 이래 최대의 비이성적 집단을 향한 강력한 저항으로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는 당신도 '이석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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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지와 민족21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현재는 (사)평화의길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유튜브 채널 명진TV를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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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이석기'가 될 수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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