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나마프라트를 선보이고 있는 에티오피아 아가씨 아디스와
김혜원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라고 부르지 않고 분나라고 해요. 분나마프라트, 영어로는 커피 세리머니라고 부르죠. 오지 주전자에 한약처럼 푹푹 끓인 에티오피아식 커피 드셔 보셨나요? 아마 한국에서 드시던 커피랑은 전혀 다른 맛일 거예요. 한번 즐겨보세요." 분나마프라트는 화려한 색으로 시작했다. 갓 따온 푸르고 싱싱한 나뭇잎과 크고 붉은 꽃으로 장식한 동그란 꽃방석 위에 흰 레이스 커버를 얌전히 덮은 앉은뱅이 찻상이 놓여 있다. 꽃방석 중심에는 꽃받침 모양의 작은 향로가 있고 그 옆 숯불을 담은 화로 위에는 목이 긴 토기 주전자 '제베나'를 올려놨다. 무엇에 쓰이는지 모르겠지만, 깨끗한 물을 담아놓은 플라스틱 그릇도 보인다.
분나마프라트의 주인공인 에티오피아 아가씨 아디스와가 손님들이 꽃방석 주변에 둘러앉는 것을 보며 향로에 숯덩이와 함께 노란색 송진덩어리를 올려놓으니 흰 연기와 함께 진한 향내가 실내를 가득 채운다. 세리머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차를 마시기 전 향을 피우는 풍습은 중국이나 한국·일본에도 있기에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향으로 주변의 잡냄새를 없애 차 본연의 향과 맛에 집중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 그 하나이며, 연기를 피워 올리는 것으로 행사의 품위를 높이고 손님에게 극진한 존경과 예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송진과 나무껍질 그리고 알 수 없는 묘한 것들이 어울려 타들어 가며 뿜어지는 흰 연기가 찻상 주변으로 둘러앉은 우리를 포근하게 감쌌다. 긴 시간 비행에서 오는 피곤함 때문인지 진한 향냄새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환각에 빠진 듯 잠시 정신이 몽롱해졌다.
예사롭지 않은 커피향"전통방식으로 빵을 쪘어요. 손님 중 가장 나이 많으신 분이 잘라주세요."뜨베가 빵을 덮었던 보자기를 열고 칼을 건넨다. 누렇게 쪄낸 빵에서는 구수하고 달큼하며 시큼한 냄새가 난다. 밀가루와 옥수수가루에 효모를 넣어 발효시킨 후 찜통에 쪄낸 자연 발효빵. 우리에게도 익숙한 빵이다. 빵 위에 써진 '웰컴'이라는 글자에 눈길이 간다. 손님을 위한 소녀들의 깨알 같은 정성이다.
손님들이 빵을 자르고 떼어 먹는 동안 아디스와는 제베나에 물이 끓는 것을 확인하고 커피 가루를 넣었다. 끓고 있는 물에 가루를 넣으면 거품과 함께 끓어 넘칠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약탕기를 연상시키는 두꺼운 토기 주전자 제베나에 그들만의 과학이 숨겨져 있는 모양이었다. 제베나가 가진 또 다른 과학은 비등점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 2000미터 이상인 에티오피아는 높은 고도 때문에 비등점이 낮아 95도씨 정도면 물이 끓는다. 하지만 두껍고 목이 긴 제배나의 경우 기압 차이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어 진하고 깊은 커피를 우려내는 데 효과적이다.
커피가 우러나면서 송진향을 압도하는 진한 커피 향이 집안에 가득하다. 커피 아로마의 손실을 최대한 막기 위해 제베나의 주둥이를 좁고 길게 만들고 뚜껑까지 덮었지만, 끓고 있는 커피의 향이 워낙 강하다 보니 밖으로 퍼지는 향도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커피를 석 잔이나 마시라고? 그 이유 들어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