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운지를 좋아해"헬기 이름을 지어달랬더니 운지 어쩌고 한다. 위의 친구 닉네임엔 '빨갱이'란 말도 보인다.
김석민
한 아이가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에 자신이 만든 헬리콥터 그림과 함께, 이름을 지어달라는 글을 올렸다. 이내 친구들의 댓글이 달렸다. 근데 댓글 내용이 가관이다. 어떤 아이는 '빨갱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으며, 어떤 아이는 '난 운지를 좋아해'라 적어 놓았다. 이유는 헬기가 곧 추락할 거 같아서란다. 둘 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길래 불러서 물어보니, 도대체 왜 고작 이런 말을 썼다고 불려왔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냥 사람들이 쓰길래 저도 쓰는 거예요. 재미로."대구에서 초등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조아무개(30) 교사 또한, "대구타워에서 갓바위 부처님이 떨어지는 그림을 그려놓고 '운지'라는 표현을 썼길래 아이를 혼냈더니, 그냥 재미로 쓴 것이라며 억울해 하더라"라는 이야기를 전해 왔다. 즉, 뜻도 모르면서 그냥 재미로 사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진짜 뜻을 알려줘도 쓰는 아이들, 교육이 필요하다사실 아이들이 잘 모르고 쓰는 말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아이들이 쓰는 욕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담임했던 아이들이 저학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에 욕을 달고 살길래, 너희들이 버릇처럼 쓰는 손가락욕을 비롯한 각종 비속어들이 엄청나게(!)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 적이 있다. 아주 직설적으로. 그 결과, 단기적으로 아이들의 욕설 사용이 조금 줄긴 했다.
그런데 방학이 지나고 돌아오니, 아이들은 다시 '리셋'되어 있었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있는 동안, 아이들을 둘러싼 가정환경, 지역환경, 미디어환경 등으로 인해 그대로 돌아와 버린 모양이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렇게 아이들은 화선지가 먹물을 흡수하듯 너무나 쉽게 나쁜 버릇에 물들곤 말았다.
'일베 언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일단 아이들은 정확한 의미를 모른다. 그냥 주변에서 말하는 대로, 들리는 대로 킥킥거리며 따라할 뿐이다. 뭔지는 몰라도 그런 언어들을 쓰며 킥킥거리는 것이 재미있어 보이니까. 다 큰 어른인 시크릿 멤버 전효성양도 '민주화'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고 썼다는데(이 해명의 진실 여부는 미뤄놓더라도), 어린 아이들 중 '운지', '홍어', '슨상님', '~노?', '앙망' 등 일베 언어의 어원을 제대로 알고 있는 아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래서 더 문제인 것이고, 우리 교사들의 역할도 그만큼 더 커진 것이다. 꼭 일베가 아니더라도, 교육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이런 언어와 문화들은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예의도 없으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당연히 교육이 필요하다. '반(反) 일베' 교육이 아니라, 이것은 당연히 꼭 필요한 인성교육이며, 네티켓 교육이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5·18 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되신 분들의 사진을 보며 '홍어운운' 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