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2012년 9월 25일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월운리 수리봉 21사단 수리봉 유해발굴현장을 방문, 유해발굴단원 및 장병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실 박근혜 당선인이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걸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사전에 예측하지는 못했다. 그간 정치인으로서 박근혜 당선인의 행보는 그다지 여성정책에 대해 크게 비중을 할애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거운동 기간 '여성대통령 후보로서 여성의 인권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야당의 맹공을 받았을 때, 박근혜 당선인이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호주제 폐지와 성충동 약물치료법(화학적 거세) 정도였다.
사실 호주제 폐지의 경우 모든 여성운동단체 및 여성정치인들이 참여한 공동활동이기 때문에 박근혜 당선인의 단독적인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성충동 약물치료법의 경우, 과연 여성의 인권에 기여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점을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사실 박근혜 당선인은 자신의 정치인생을 통틀어서 여성 인권에 특화된 활동을 그다지 전개한 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여성정치인으로서 스스로를 내세우지도 않았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당선인이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을 때,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박근혜 당선인의 정치적 기반인 영남권의 보수적인 표심이라든가 국방 및 안보 문제에서의 '북한과 전쟁 발생시 군대를 안 갔다온 여성이 어떻게 지휘할 것인가?' 같은 남성들의 불안을 고려했을 때, '여성대통령'이라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시기상조일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로 박근혜 당선인은 사전선거운동기간에 어울리지 않는 군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등 '강한 리더십'을 연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려고 했다.
사실 18대 대선은 여느 대선에 비교해봤을 때 여성 후보가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정희 후보, 심상정 후보를 비롯하여 김소연 후보, 김순자 후보까지 총 5명의 여성 후보가 출마하거나 출마의사를 밝혔다. 그렇지만 박근혜 후보를 제외한 어느 여성 후보도 '여성대통령' 후보라는 것을 강조하거나 선거 전략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표심이 중도로 집결되는 선거정치의 특성상, 비주류인 야권 후보들이 오히려 더욱 비주류임을 강조하는 선거 전략을 내세우기는 쉽지 않았으리라고 십분 이해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보가 가지는 방향성이 여전히 계급문제나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등의 의제에만 국한된다는 것은 많은 아쉬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은 기존의 보수이미지를 혁신하고 싶었던 박근혜 당선인의 차지가 되었다. 특별히 후보 간 정책 및 공약의 변별성이 드러나지 않았던 18대 대선에서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박근혜 당선인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지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내 평생에 남자들이 여자 뒤에 서는 걸 한 번이라도 보고 싶었다는 한 50대 여성의 이야기는, 서글프면서도 마음이 답답해지게 한다.
'철의 여인'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집권하던 시대는 그다지 인권적으로 발전되었던 시대가 아니었다. 대처는 한편으로는 TV 광고에 나와서 앞치마를 두르고 인자한 어머니 흉내를 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던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자비하게 진압하였다. 신자유주의의 시작을 알리던 대처의 시대는 많은 민초들의 눈물과 함께 막을 내렸다.
국정원 여직원의 불법선거운동 의혹과 관련된 논란에서 보듯, 박근혜 당선인의 '여성관'은 여성을 생물학적 성별로 치환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여성'이라는 지위와 다른 사회적 관계를 연결짓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단지 '여성'의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을 입장 또한 지지한다는 일종의 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박근혜 당선인의 '여성관'이란 개인적인 온갖 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위기의 순간에만 사회적 약자인 '여성'으로 둔갑해서 성희롱을 당했다거나 인권침해를 당했다거나 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인식으로는 차기 정부에서도 박근혜 당선인이 여성 인권을 위해 기여할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낙후된 프레임으로는 박근혜 넘어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