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의 형세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듯이 정겹다. 어우러진 산들의 형상에서 작가는 세상살이의 근본적인 삶의 철학인 조화와 배려를 이야기하고 있다.
정태인
그가 산을 바라보는 관점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산을 본다"라는 관점이다. 그저 산이 좋아 산을 찾았고 산을 보고 산을 그렸다. 그 산을 자신의 화폭에다 옮겨 놓기를 원했다. 자신의 붓아래 새로운 형상이 만들어 질 것만 같았다. 당시의 산은 그에게 넘볼 수 없는 외경스러움이었다. 젊음과 열정 그리고 예술혼이라는 칼로서 넘어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손에 굳은 살이 박히고 터져서 피가 날정도로 산과의 대립과정이 있었다.
당시의 그의 산은 많은 조각과 점들로 이루어져 하나의 거대한 자연을 표현하고 있다. 어떤 작품들은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욕심으로 매우 무섭고 어두운 산으로 표현되기도 했으며, 어떤 작품은 一刀兩斷의 기백으로 그려내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당할 만큼의 기운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이후 그는 "산속에서 산을 본다"라는 관점으로 진일보한다. 그가 집을 떠나 산속에서 생활하면서 터득한 새로운 관점이며 새로운 세계인 것이다. 그는 그속에 또 다른 산이 존재함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그가 그리고자 했던 것이 산의 형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작품세계를 열게된다. 산속에서 그는 산이 갖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의 조화로운 삶과 어울림을 보았다. 산의 일부이되 전부일 수 있는 그 작은 생명들의 울림을 그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 때부터 그의 작품세계의 관점이 산과의 어울림이 되었다.
그 속에서 세상이 삶과 희노애락이 표현되었으며 다양한 작품세계가 열린 것이다.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일었던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듯했다. 다소의 파격의 시도도 거침없이 그의 화폭속으로 녹아들었다. 이시기의 그의 작품세계는 다양한 소재들을 표현하고 있다. 가로수길, 연꽃, 소나무, 꽃 등 산 이외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탄생되었다.
왕성한 작가정신은 끊임없이 작품을 쏟아냈으며 수많은 작품과 전시회로 그는 세상에 '산을 그리는 서양화가 박기수'로 입지된 것이다. 아마도 1년에 2~3회의 개인전을 이 시기에 열었다.
"새로운 항해를 위해 닻을 올리다"이런 다작의 시기를 지나 그는 "산속에서 나를 본다"라는 관점으로 옮겨간다. 산은 그에게는 고향과 같은 곳이다. 무수히 많이 그 산을 뿌리치고 나왔었지만 그는 다시 산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 그는 산속을 드나드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가 두고 온 도시의 흔적들과도 상면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니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새로운 도전일 수 있는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모든 허망함과 세상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고 찾아야 하는 파라다이스를 향해서 새로운 항해를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예전 프랑스의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처럼 현대예술인들이 자신의 세계를 찾기 위해 모여드는 미국 뉴욕을 향해 희망의 닻을 올린 것이다. 이번 '渡美告別展'은 그의 작품세계를 사랑했던 고국의 미술애호가들에게 올리는 그의 인사이다.
서로를 배려한 조화로운 삶이번에 선을 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인생을 관조한 작가의 정신세계가 온전히 표현된 수작들이 대부분이다. 표현기법도 다양해지고 자연과의 부드러운 조화가 잘 표현된 작품들이다. 그의 산들은 말한다. "이제는 주변과 어울어져 행복하세요" 라고 말한다. 그가 표현한 산들은 때로는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가 어깨를 좁혀 서로를 끌어안아주기도 하며 서로에게 행복의 생명수를 권하기도 한다.
또한 그가 산속에서 들여다본 또 다른 산들인 형상들도 서로 배려하며 미소를 던진다. 산과 구름, 바다와 암벽들, 꽃과 나무들도 서로의 존재를 내세우지 않고 조화를 우선한다. 하늘이 열리고 파도는 잔잔한 숨소리를 뱉어놓는다. 나뭇잎은 단풍이 든 채로 그늘을 만들고, 검은 암벽들은 그에게로 와서 따뜻한 형상으로 다소곳이 앉아 있다. 백두산 천지는 5000만의 염원을 담고 갈증난 우리에게 맑은 청청수를 권하고 있다.
아득한 암벽위에 처절한 생명력을 이어가는 노송도는 우리에게 욕심과 열정마저 내려놓고 평온을 찾으라고 권하고 있다. 장대한 폭포와 웅장한 금강산의 만물상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대자연속에서 얼마나 미미한 것인지 알려주려 한다. 서로가 서로의 변을 맞대어 있는 수천개의 다랑이 논처럼 각박하고 혼탁한 세상이지만 희망을 갖고 행복하려면 서로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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