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공개한 삼성전자 내부 문서. 아이폰과 갤럭시S를 분석하고 개선방향을 제시했다. 하단 개선방향에 "디자인의 차별화로 애플 아이콘을 모방했다는 느낌을 없앨 것"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삼성전자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삼성전자가 자신의 최대 고객인 애플과의 특허전쟁을 감수하고까지 어째서 그렇게 유별난 과감성을 보이며 애플의 제품들과 경쟁했을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다른 안드로이드폰처럼 온순하게 경쟁할 수는 없었을까? (그렇게 해서도 애플과의 특허소송을 피할 수 없었겠지만) 삼성전자의 왠지 모를 자신감과 전투력은 아마도 모종의 '과신'과 '경시'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산업에서 애플보다는 확실히 앞선 터줏대감이며 비교조차 안 되는 상당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표준특허'는 애플이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이런 자신감이 곧 소송을 글로벌 특허전쟁으로 확전한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 특허나 트레이드 드레스 등 애플의 제품 외관에 관한 권리가 갖는 위험성은 경시된 것 같다. 소송 초기 애플의 디자인 특허공격을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고 평가한 대목이 이를 입증하기도 한다. 결국,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삼성전자에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 국면이다.
제품의 기능을 구현하는 '기술'과 제품의 외관에 관련한 '디자인'(편의상 이 글에서는 디자인특허, 사용자 화면에 관련한 소프트웨어 특허, 트레이드 드레스를 포함한다)이 있다. 삼성전자는 데이터 전송 기술이나 전력효율에 관한 기술 등 원천적인 기술특허를 애플이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기술 없이는 애플이 제품을 만들 수 없으므로 비유하자면 애플은 세입자이며 자신들은 그 기술로 집을 만든 소유자라고 주장한 것이다.
반면에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외관을 삼성전자가 모방함으로써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삼성전자의 특허침해주장에 대항해서는 살림살이가 있는데 어떻게 함부로 방을 빼라고 하느냐, 나가 죽으라는 말이냐, 라는 듯이 항변했다(비유하자면 그렇다).
사람들은 흔히 기술특허가 원천적이므로 삼성전자의 권리가 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곧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기술 중심주의에 젖어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작은 권리이든 큰 권리이든 권리라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데 기술특허의 경우에는 사인(私人)인 특허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초점이 있지만, 디자인에 관한 권리는 권리자의 사적인 권리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혼동까지 생각하게끔 하는 권리여서 공적인 특성이 있다는 점이 자주 간과되곤 한다. 더욱이 사용자 경험이 더욱 중요해진 오늘날 산업에서는 디자인이 기술보다 하급으로 취급될 근거도 사라지고 있다.
삼성전자 특허가 강하다? 애당초 애플이 유리했다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소송은 아무래도 애플이 유리하고 미국 재판이 걱정이라고 여러 번 밝혀 왔는데, 왜 그런지 그 연유를 한번 살펴보자. "정말로 피할 수 있는 것인지 여부"는 이 소송을 이해하는 데 '정말로' 중요하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특허를 정말로 피할 수 없는가? 반대로 삼성전자는 애플의 권리를 정말로 피할 수 없는가? 전자는 Yes, 후자는 No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게 문제라는 것이다.
얼핏 그렇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특허제도보다 더 근본적인 법률인 '경쟁법'(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공정거래법, 흔히 반독점법)을 호명하기 때문이다. 즉, 애플을 상대로 한 삼성전자의 특허공격은 경쟁자인 애플을 시장에서 추방하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애플이 "그러면 우리보고 통신기능이 없는 아이폰을 만들라는 거예요?"라고 항변할 때, 로열티 이외에 적절한 퇴로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토끼몰이식 공격으로 인식될 수 있으며, 그러면 경쟁법을 위반하는 행위로 판단될 위험이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표준특허 공격이 그렇게 인식되었던 것이고, 이런 우려와 인식은 2011년 10월 네덜란드 재판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가 표준특허권자로서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판결이다. 네덜란드 재판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반독점조사에 착수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지난 금요일 우리나라 법원은 삼성전자를 옹호했지만, 이는 경쟁법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듯싶다. 선진 자본주의 사회는 경쟁법을 엄격하게 바라보지만, 우리나라는 경쟁법보다는 경쟁법을 적용하는 권리남용의 범위를 오히려 엄격하게 판단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
반면에 애플의 디자인에 대한 권리는 용이하게 변경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문제다. 삼성전자의 제품에 대한 판매금지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삼성전자는 해당 제품들의 소프트웨어를 변경하거나 외관을 변경해서 다시 시장에 판매 금지된 제품을 내놓는다. 결국, 삼성전자로서는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실제로 여러 차례 그런 일이 있었다). 그렇다면 판사는 그리고 배심원들은 삼성전자의 제품을 판매 금지하는 결정을 내리더라도 삼성전자나 소비자들에게 큰 타격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차피 삼성전자는 새롭게 개선된 제품을 최단시간에 다시 출시할 것이다.
만일 상황이 이러하다면 굳이 문제가 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애플의 권리를 존중하여 다르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심증이 생기게 되는 구조이다. 즉, 이 특허전쟁에서 재판부가 애플의 손을 들어주더라도 시장의 흔들림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점, 그렇지만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주는 순간 단일 모델로 제조하는 애플의 비즈니스에 상당한 타격이 되고 소비자의 선택권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으레 걱정하게 된다는 점이 애플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다. 게다가 애플의 디자인특허의 침해 여부는 판사와 배심원들이 이해하기 쉽고, 삼성전자의 기술특허 침해주장은 기술적인 내용으로 어렵게 인식된다는 점도 삼성전자의 불리함이었다.
'애플 완승'은 보호무역주의? '삼성 배후'는 구글어떤 이는 미국 배심원의 평결을 보호무역주의라는 담론으로 가두려고 한다. 지나친 상상력이다. 미국은 애플이라는 회사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소송의 배후에는 구글이 있고, 구글도 미국 회사이다. 또한, 삼성전자와 애플 사이의 특허소송은 모토로라와 애플이 싸우는 특허전쟁과 동전의 다른 면이기도 하다. 모토로라도 미국 회사다. 미국시장에서 안드로이드 진영은 애플보다 더 힘을 발휘하고, 더 많은 소비자가 안드로이드를 사용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같은 금요일에 내려진 한국 법원의 판결은 삼성전자에게 사실상 승리를 선사했고, 미국 법원의 배심원 평결은 애플의 완승을 선언해서 얼핏 애국심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는 있다. 의문은 품어도 근거는 되지 못한다. 국적보다 더 영향력 있는 사실은 삼성전자의 제품이 애플의 제품과 유사함을 입증하는 법리와 증거들이다. 게다가 이 소송은 한국과 미국에서만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니다. 애플을 상대로 한 삼성전자의 특허 공격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호주 등에서 완전히 기각되거나 혹은 극히 부분적으로 인정되었을 뿐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특허를 보호무역주의의 무기로 삼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일이다. 현재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애플의 iOS가 양분하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8로 천하 삼분지계를 도모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 모두 미국 회사여서 보호무역주의가 개입될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것은 이 특허 전쟁의 긍정성마저 없애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