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에 라작, <텔레비전과 동물원>
마음산책
라작은 저서 <텔레비전과 동물원>에서 '리얼리티 TV는 동물원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리얼리티 TV는 공들여 만들어졌음에도 사실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 처한 평범한 개인들을 보여주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틀어 가리킨다. 자연적 환경과 흡사한 배경 속에서 항시 촬영되는 개인을 보여주며 일반인들의 성격과 반응에 대한 관심을 유발한다. 시청자는 TV 속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차별화한다.
그는 이러한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이 동물원 스펙터클의 특성을 닮았다고 말한다. 동물원 스펙터클은 이질성과 야수성과 이국성의 전시를 보여주고, 리얼리티 TV는 평범한 일상에서 자신과 동일한 캐릭터를 찾아내도록 한다. 요컨대 동물원이 갖가지 동물을 보여주듯 리얼리티 TV는 자연스러운 면모를 지닌 거짓 정체성과 캐릭터들을 만들어내고 익명으로 통용함으로써 심리학적이자 사회적인 종들을 정의하고 보여준다.
'리얼리티 TV와 동물원의 유사성을 통해 야기되는 문제점은 무명의 배우들을 동물처럼 다룬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문제는 표본들을, 총칭적인 에토스를 만들어내고, 그것의 지위를 격상하고, 그럼으로써 그것의 전파를 보장하는 리얼리티 스펙터클의 힘 안에 있다. TV화한 동물원은 일상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훨씬 강렬하고, 훨씬 진짜 같은 현실을 보여준다.' <텔레비전과 동물원> 우리는 마치 동물원에 갇힌 동물을 불쌍하게 바라보듯, 리얼리티 TV 속에 등장하는 출연자들을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의 입에 그들의 사생활이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작은 리얼리티 TV의 문제점이 무명의 배우들을 동물처럼 다룬다는 데 있지 않다고 명확히 주장한다. 그가 지적하는 문제는 '길들이기'에 있다. 동물원에 전시되는 동물처럼 리얼리티 TV 속에 전시되는 개인들은 전시물로서 길들고, 그것을 보는 시청자 역시 관중으로서 길든다는 것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이름 그대로 진짜 현실을 볼 수 있어야 하지만, 정작 출연자의 캐릭터와 배경은 시청자의 가정된 취향에 영향을 받는다. 이때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매체 특성상 공간과 시간의 은폐, 집약과 단순화가 매우 중요해진다. 평범한 일반인들이 이야깃거리가 되려면 기획, 연출, 편집 단계에서 어느 정도 가공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봐야 할 것들이 쏟아지는 바쁜 현대인에게 평범한 이야기는 홀대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리얼'을 원하는 시대에 진짜 '리얼'을 볼 수가 없다.
한마디로 리얼리티는 진짜 리얼한 것이 아니라 리얼한 것처럼 꾸며질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리얼리티 TV 스펙터클이 자연적이며 즉흥적이라고 믿기를 원하고 있는 건 아닐까? SBS <짝>뿐만 아니라 수많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대본이나 설정, 편집 논란에 휘말려 왔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붕어빵에 진짜 붕어가 들어 있지 않다고 따지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