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이 방에 걸려있는 패딩 잠바. 딸은 이 옷을 사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김미란
그렇게 패딩과 씨름한 지 한달 반이 지나서야 간신히 하나 살 수 있었다. 고르다가 나도 지친 것이다.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옷을 약간 할인받아 20만 원에 샀다. 정말 나로서는 큰 맘 먹고 사준 옷이다. 딸은 너무 좋단다. 손수 세탁하고 때 탈까 봐 조마조마하는 모습이 어린애 같다.
딸에게 패딩을 사주었더니 이번엔 아들이 투덜댄다. 사촌형에게서 물려 받은 오리털 파카가 무겁고 콕콕 찌른다나. 그러더니 누나가 잘 안 입는 큼직한 체육관 패딩을 입고 다니며 시위를 한다. 아, 이번 전투는 내년으로 미루어야 할 텐데….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의복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 겉옷은 물론이고 양말, 속옷, 신발, 모자, 장갑, 벨트까지 물려 받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옷을 달라고 공표해 놓으면 친척, 친구, 친구의 친척 등등에게서 옷이 들어왔다.
앞서 말한 음식처럼 지금도 옷을 이렇게 주고받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애들이 크니까 마냥 얻어 입힐 수는 없다. 애들이 원하는 옷을 사줘야 할 때가 잦은데 그러다 보니 의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진다.
나는 세상에 넘쳐나는 옷을 내 손으로 사고 싶지는 않다. 이건 내 독특한 취향이자 주관이다. 너무 많은 옷이 있고 그걸 다 소비하지도 못하는데 계절별로 재질별로 디자인별로 만들고 또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니 나 하나라도 남들이 안 입는 옷을 입어 덜 소비하면 덜 만들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에서 옷을 사지 않으려 한다.
이건 고기를 덜 먹는 사람이 늘면 열대림을 덜 불태우고 목축업을 줄일 것이며 그만큼 아프리카도 덜 메마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같은 발상이다. 옷을 과잉 생산하기 위해 동물들을 학대하고 석유를 더 소비해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겉모습에 지나친 관심을 쏟으며 과잉 소비하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그러나 내 주장만 너무 펴다 보니 아이들과 종종 부딪힌다. 옷을 얻어 입고, 집에서 만들어 입는 게 내 방식인데 아이들은 그런 나를 이해하면서도 가끔은 사입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요즘은 한도를 정해 그 안에서 애들에게 옷을 사준다. 그렇지만 내 생각이 바뀐 건 아니다. 사는 옷은 최소한으로, 나머지 옷은 얻어 입거나 만들어 입는 것, 앞으로도 쭉 그리 할 거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일수록 더욱 내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식품비도, 의류비도 나누고 직접 만들고 하면 줄일 수 있다. 돈을 아껴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이렇게 사는 게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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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팔아 쌀 샀는데... 이젠 패딩 두고 딸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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