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O26000UN PRI (유엔 사회책임투자) 에 가입한 국민연금의 거부권 행사. 과연 기업사회혁신의 마중물이 될 것인가
이재흥
윤리경영·창조경영·지속가능 경영 등의 개념이 보편화했다고 할지라도, 지역·이슈·운영기관 별로 중복적으로 발표하는 기준·규범·강령·규제 등이 너무 많아 어떤 것을 따라야 할지 혼란에 빠지기 십상이다. '세레스 원칙' '글로벌설리반 원칙'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ICC비즈니스 헌장' 'ISO 14001' 'ISO26000' '사회적 책임 8000' '미 연방정부 선고가이드라인' 'AA1000' 등등. 참 많다.
또한 이를 실천하고 실행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기업사회혁신 담당자는 내부 구성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메시지를 확산시키고, 최고경영자를 설득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뿐만 아니라 기업 핵심전략과 CSR 전략을 통합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담당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한한 인내심, 그리고 높은 수준의 업무역량이다.
소기업발전소에서 진행했던 국내 기업사회공헌 컨설팅과 협력사업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몇몇 기업 CSR 담당자들은 바람직한 롤모델로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 <다솜이재단> 등을 꼽았다. 그들은 CSR의 구체적인 상을 이미 정립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조직 내 구성원들, 특히 최고경영자나 상급자와 공유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었다. 연간 임직원 자원봉사 시간이 8만 시간을 넘었다는 성과보고를 받은 CEO가 "8만 시간 동안 놀았다는 이야기로군"이라고 읊조렸다는 일화는 CSR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저자인 제이슨 바울은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기업사회 혁신으로 가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첫째, 올바른 기업사회혁신 전략을 수립한다. 가장 일반적인 유형의 전략은 다섯 가지다. ▲서브마켓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서 매출 올리기 ▲백도어 채널을 통해 신규시장 진입하기 ▲고객들과 정서적 유대감 만들기 ▲인재채용을 위한 파이프 라인 만들기 ▲역로비를 통해 정책에 영향 미치기 등이다. 이러한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비즈니스와 연관된 사회 문제를 분석하고 가용한 핵심 자산을 파악한 뒤, 가장 중요한 '혁신요소'를 접목해야 한다. 보편적인 혁신요소인 잠재적인 고객군을 찾아내거나, 공익적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 핵심역량을 재배치하는 것, 유통망을 신설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을 참조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둘째, 수립된 전략을 기업 내 다른 비즈니스 부서들과 통합하는 데 집중한다. 최우선 통합 목표는 기존의 '지속가능 경영' 부서다. 이를 위해 비즈니스 일반에 대한 높은 이해와 역량을 갖춰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훌륭한 팀원을 구성하고, 쉽고 일관된 메시지를 만들어 구성원들과 소통하며 호응을 이끌고 성과를 내야 한다. 때로는 노련한 정치력으로 경영진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 때도 있다. 때문에 일반 프로젝트 관리자(project manager)로서 숙련도가 높고 뛰어난 성과를 낸 이들을 담당자로 임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성공요소라 할 수 있다.
셋째, 선보인 성과는 반드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성과는 사회적 자본시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많은 기업들이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지수' '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 등의 기준을 준수하지만, 정형화된 틀에 얽매이거나 억지로 비용과 성과사이의 연계성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뢰성 있게 측정하는 것, 그리고 스마트한 측정표시를 만드는 것이다. 저자가 소개한 맥도날드 기금 모금통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매장 내 설치된 모금통의 기부 총액은 해마다 증가했지만, 사실 고객들은 모금통을 '잔돈 버리는 장소'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한 모금 총액 대신, 모금통에 든 '지폐의 숫자'를 측정지수로 선정했다. 그 결과, 명확한 연계성과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회책임투자 시장이 문제를 푸는 열쇠그렇지만 여전히 의문이 든다. 과연 기업이 이처럼 종합적이고, 총괄적이며, 비용이 소요되지만 쉽게 성패를 점치기 어려운, 또 매우 시급하지도 않은 조직개혁 프로젝트 실행에 나설 수 있을까. 과거에도 현재도 CSR을 하지 않는 기업들은 여전히 잘 나가고 있지 않은가.
아직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급성장하고 있는 '사회책임투자(SRI) 시장'이 이 문제를 푸는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UN 주도 아래 2006년 결성된 유엔책임투자원칙(UN PRI)에 서명한 회원사가 이미 916개를 넘어섰고, 총 운용 자산이 이미 30조 달러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여기에 서명을 했는데, 올해 3월 주목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큰 손'이라 불리는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계열사 부당 지원과 분식회계 등으로 처벌받은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반대한 것이다. 두 사람의 행위가 유엔책임투자원칙이 정한 기준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공적연금인 ATP 역시 현대차를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 APG 자산운용은 백혈병 논란에 의혹을 제기했고, 삼성의 재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겨레21> 880호 '사회책임경영, 부드러운 기업혁명이 시작됐다' 참고)
본디 기업이라는 조직의 핵심 구성원리, 존재 이유는 바로 사업 계획서 최정점에 있는 '사명(Mission)'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이란 맹목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닌, 바로 그 사명을 사회에서 실천하고 가치를 사회 속에 구현하는 조직이란 것을 우리는 너무 오래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업에 대해서는 여러 상반된 시각이 있다. 기업은 영혼도 없고 걷어찰 엉덩이도 없는 나쁜 사람들이라는 한 외국 NGO 활동가의 표현,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양의 탈을 쓴 늑대 등 기업은 우리에게 일자리를 비롯한 수많은 혜택을 주지만, 언론에 터져 나오는 나쁜 소식들은 우리에게 많은 실망감을 안겨 준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서라도 나는 기업의 진정성과 잠재력, 가능성에 대해서 한 치의 의심도 한 적이 없다. 이것은 기업 현장에서 겪은 나의 믿음이며 신념이다."(역자 안젤라 강주현) 덧붙이는 글 | < CSR 3.0 > (제이슨 사울 씀, 안젤라 강주현 옮김 | 청년정신 | 2011.10 | 1만7000원)
이재흥 기자는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 연구위원입니다. 이 기사는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 누리집(http://blog.makehope.org/smallbiz/505)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CSR 3.0 - 기업사회공헌에서 기업사회혁신으로
제이슨 사울 지음, 강주현 옮김,
청년정신,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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